“독립영화 전용극장에서 상영될 수 있게 됐어요. 그 덕에 영화가 오래 극장에 걸릴 수 있고요. 요즘 영화관에서 오래 상영되는 게 참 여러운데 감사한 일이죠.”
영화 ‘안나푸르나’로 돌아온 황승재 감독은 최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카페에서 일간스포츠와 만나 이 같이 말했다. 황 감독은 이날도 두 차례 ‘안나푸르나’의 관객과의 대화(GV)를 진행한 상태였다.
“오늘 진짜 말을 많이 했어요. 영화를 본 관객들이 여러 질문과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황승재 감독이 생각하는 독립영화의 힘은 바로 그것이다. 영화를 보고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관객. 독립영화 관객들은 보통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오락이 필요해서 극장에 오지 않는다. 무언가 생각하고 싶고, 화두가 필요해 극장을 찾는다. 이런 능동적인 관객들은 저예산, 혹은 투자 지원을 받지 않고 만들어지는 독립영화계의 큰 자양분이다.
황승재 감독은 ‘안나푸르나’의 배급 진행 업무에 직접 참여했다. 영화 배급이 워낙 어려운 최근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전체 예산이 3000만 원이 채 되지 않는 영화로서는 최대한 자급자족을 해야만 했다. 그래도 황승재 감독은 “제작비는 회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웃었다.
“저는 이제 영화라는 문화 자체가 기존에 우리가 인식했던 것과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팝콘에 콜라를 들고 보는 게 블록버스터라면 독립영화는 극장에서 영화도 보고 커피도 마시고, 영화를 본 뒤에 갤러리에서 전시도 감상할 수 있어야죠. 상영이 끝난 뒤에는 감독을 비롯해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과 대화하는 시간도 갖고요.”
영화계의 위기라는 현 상황 속에서 황승재 감독이 강조하는 건 ‘인식의 변화’다. 영화계가 위기라는 건 영화계 안에서의 시각으로만 봤을 때다. 경제가 전반적으로 침체돼 있는 상황 속에서 어렵지 않은 곳을 찾는 게 오히려 어렵다. 황 감독은 “그렇게 따지면 다 위기다. 언론사도 (재정적으로) 위기 아니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언론사가 없어질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해요. ‘돈’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바라봐야 오히려 해결책이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문화는 없어지지 않아요. 사람들이 블록버스터에 열광하는 시대라 해도 독립영화는 살아남으리라 보고요.”
황승재 감독은 실제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안나푸르나’를 포함, 네 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안나푸르나’는 인도의 유일한 독립 영화제인 다다 사헵 팔케 영화제(Dada Saheb Phalke Film Festival)에 초청돼 특별언급을 받는 기쁨도 얻었다.
누구나 꿈꿀 수 있지만 누구나 오를 순 없는 안나푸르나처럼 황승재 감독은 작은 성취에 기뻐하며 계속 영화라는 산을 오를 계획이다. 황승재 감독은 “8000m 위에 성공한 분들이 있다면 나처럼 한참 아래서 둘레길을 걷는 사람도 있는 것”이라며 “계속 이 둘레길을 돌며 영화라는 수다를 떨고 싶다”고 희망했다.
‘안나푸르나’는 강현(김강현)이 어느 봄날 얼마 전 제대한 후배 선우(차선우)와 함께 북악산을 오르며 나누는 대화를 담은 작품이다. 지난 8일 개봉해 독립영화 전용관을 중심으로 상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