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스틸. (사진=시네마뉴원 제공)
어리석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꿈을 꾸기에 사랑스러운 게 사람 아닐까.
‘안나푸르나’는 어느 봄날 등산을 가기 위해 만난 두 남자의 시시껄렁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대화를 담은 영화다.
얼마 전 제대한 후배 선우(차선우)와 함께 북악산 등산길에 오른 강현(김강현).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꿈꾸는 강현은 선우에게 등산의 매력을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대화는 자연스레 두 사람의 지난 관계들로 이어진다.
작품에서 안나푸르나는 은유로 사용된다. 그것은 늘 가슴 속에 품고 살지만 미처 시도해 보지 못 했던 꿈일 수도 있고, 잘해보려고 했으나 좋은 결말을 맺지 못한 관계일 수도,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관계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안나푸르나' 포스터. (사진=시네마뉴원 제공) 영화에서 주로 안나푸르나는 강현과 선우의 지난 관계들에 빗대어진다. 두 사람 모두 호감을 가진 상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아직 서툴다. “나한테서 부탁해서 안 되는 일 있어? 다 돼, 다 돼”가 습관인 강현은 원치 않게 자꾸만 여성들에게 어장관리를 당한다. 회피형 인간인 선우는 만남부터 이별까지 뭐 하나 자기 입으로 먼저 얘기하는 게 없다.
그럼에도 지난 관계들이 모두 힘들고 괴롭기만 했던 건 아니다. 때론 길을 잃어 헤맬지라도 어떨 때엔 크게 웃었고, 어떨 때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하기도 했다. 산의 정상을 향해가는 과정이 힘들지라도 나무 그늘 밑에서 느끼는 바람에 땀을 식히고 곧 정상이라는 표지판에 희망을 갖는 것과 비슷하다. '안나푸르나' 스틸. (사진=시네마뉴원 제공) '안나푸르나' 스틸. (사진=시네마뉴원 제공)
감독은 강현과 선우,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 오르락내리락 했던 지난 관계들을 돌이켜 보고, 그럼에도 멈추지 말고 나아가자고 관객들을 위로한다. 김강현과 차선우는 자신의 이름과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며 연기인지 실제인지 모를 정도로 자연스러운 연기 호흡을 보인다. 두 사람의 대화가 마치 실제 경험담처럼 느껴질 정도다. '안나푸르나' 스틸. (사진=시네마뉴원 제공) 전작인 ‘구직자들’과 ‘썰’에서 구직난, 청년실업, 사이비종교, 하류인생 등 다소 무거운 텍스트들을 특유의 가볍고 재치 있는 화법으로 풀어낸 황승재 감독은 이번 ‘안나푸르나’에서도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다소 냉소적이고 냉철했던 전작들과 달리 따뜻하게 이어지는 대화의 호흡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