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노란색 유니폼을 입는 축구팀은 꽤 많다. 클럽 레벨에서 노란색을 착용하는 대표적인 팀은 독일의 빅 클럽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다. 1913년 이후 도르트문트는 노란색 바탕에 검은색으로 포인트를 주는 유니폼을 입고 있다. ‘노란 잠수함’이라는 애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스페인 라리가에 속한 비야레알의 상징색도 노랑이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가수 엘튼 존이 구단주로 있었던 런던 인근의 왓포드 FC의 상징도 역시 노란색이다. 더불어 멕시코 최고의 명문 팀으로 큰 인기를 누리는 클럽 아메리카도 노란색 유니폼을 입는다.
노란색 셔츠를 입는 국가대표팀은? 스웨덴이나 콜롬비아 대표팀을 머리속에 떠오르는 팬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축구에서 노란색의 진정한 주인은 단연코 브라질 대표팀이다. 브라질은 1930년 시작된 1회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부터 현재까지 월드컵에 개근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다. 브라질은 월드컵에서 통산 76승을 기록, 2위 독일(68승)과 3위 아르헨티나(47승)를 여유 있게 앞서고 있다.
뉴욕 양키스의 핀 스트라이프 유니폼과 함께 브라질의 노란색 셔츠는 스포츠 역사상 가장 상징적이고, 경외감을 주는 유니폼으로 세계 팬들의 머릿속에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브라질 대표팀이 처음부터 노란색 셔츠를 입은 것은 아니다.
1923년 FIFA에 가입할 당시 브라질은 목의 칼라 부분에만 파란색이 들어간 하얀색 셔츠를 입었다. 그 후에도 이러한 기조는 계속 이어져 1950년까지 브라질 선수들은 하얀색 셔츠를 착용했다.
1950 월드컵은 브라질 사람들에게 특별한 대회였다. 홈에서 개최했기 때문이다. 브라질은 첫 우승에 대한 기대와 그들의 축구 열정을 가득 담아 리우데자네이루(리우)에 마라카낭 스타디움을 건설한다. 1950 월드컵은 토너먼트가 아닌 라운드로빈 방식으로 우승국을 정하는 독특한 방식을 취했다. 4강에 든 우루과이, 브라질, 스웨덴, 스페인이 서로 한 번씩 맞붙어 성적이 가장 좋은 팀이 우승하는 형태였다.
팀당 2경기를 치룬 결과 브라질은 2승, 우루과이는 1승 1무, 스페인은 1무 1패, 스웨덴은 2패를 기록했다. 따라서 브라질과 우루과이의 마지막 경기가 사실상 결승전이었다. 브라질은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 비기기만 해도 우승이 가능했고, 우루과이는 브라질을 꼭 이겨야 우승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브라질의 우승을 의심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브라질은 스웨덴과 스페인을 각각 7-1, 6-1로 대파했다. 반면 우루과이는 스페인과 비기고, 스웨덴에는 1점차 신승을 거뒀다. 더군다나 경기가 열리는 마라카낭 스타디움에는 입석 관중까지 포함해 무려 17만3850명이라는 경이적인 숫자의 팬들이 모여 일방적으로 브라질을 응원했다.
지정학적으로 우루과이는 오랜 지역 라이벌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있다. 하지만 우루과이는 문화, 정치, 경제적으로 아르헨티나의 형제 같은 나라다. 게다가 19세기 초 우루과이가 브라질에서 독립하기 위해 전쟁을 벌일 당시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가 연합군을 구성해 브라질과 싸운 역사도 있다.
따라서 축구 자존심과 더불어 정치, 역사적으로도 브라질은 우루과이에 지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객관적인 전력에 앞선 브라질은 47분에 골을 기록하며 앞서 나갔다. 그러나 66분과 79분에 연달아 골을 허용한 브라질은 결국 1-2로 패해 준우승에 그친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 마라카낭 구장은 긴 적막감이 감돌았다. 브라질이 우승할 줄 알고 미리 준비된 메달, 축사, 기념 행사 등이 줄줄이 취소됐다. 팬들은 좌절했고 울분을 토했으며 밤새도록 통곡하는 이도 있었다. ‘마라카낭의 비극’으로 불리며 브라질을 오랫동안 괴롭히게 될 국가적 트라우마가 시작된 것이다.
브라질축구협회는 자국의 유니폼 색상에도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대표팀이 기존에 입었던 흰 셔츠에 파란색 칼라, 흰 바지가 자국 국기 색상과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53년 축구협회와 리우에 위치한 코레오 다 마냐라는 신문사에 의해 새 유니폼 공모전이 열린다. 새 유니폼에는 브라질 국기에 들어 있는 4가지 색상이 모두 들어가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총 401개의 출품작 중에서 1등은 19세의 신문 삽화가인 알디르 슐리가 차지했다. 슐리는 “(당시만 하더라도) 4가지 색을 가진 축구 유니폼이 없었고, 특히 4가지 색이 잘 어울리지 않아 고민이 컸다”고 밝혔다. 슐리는 100번이 넘게 색의 조합을 실험한 끝에 셔츠는 결국 노란색으로 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카나리아(canary) 셔츠’로도 불리는 브라질의 전설적인 노란색 셔츠는 그렇게 탄생했다.
1954년 3월 브라질은 노란색 셔츠를 입고 칠레와 첫 경기를 가졌다. 결과는 브라질의 1-0 승리. 4년 후인 1958 월드컵 결승전에서 브라질은 개최국 스웨덴을 5-2로 물리치고, 사상 처음으로 우승하는 기쁨을 누린다. 그후 브라질은 월드컵에서 4번 더 우승해, 총 5번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운다. 이에 노란색 카나리아 셔츠가 브라질 축구의 운명을 바꿨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20세기 중후〮반 노란색 셔츠를 입은 펠레, 자일지뉴, 지코, 소크라테스 같은 브라질의 전설적인 선수들은 축구를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렸다. 브라질 축구의 화려함, 창의성과 즐거움을 상징하는 노란색 셔츠는 세계 축구팬의 가슴속에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