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즌(2022) KBO리그 개인 타이틀 경쟁에서는 국내 선수 강세가 두드러졌다. 이정후(25·키움 히어로즈)가 타격 5관왕(타율·안타·타점·출루율·장타율)에 오르며 최우수선수(MVP)까지 거머쥐었고, 박병호(37·KT 위즈)는 개인 5번째 홈런왕에 올랐다. 투수 안우진(24·키움)은 2년(2020~2021) 연속 외국인 선수 몫이었던 평균자책점·탈삼진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올해 외국인 선수들의 기량은 지난해에 비해 상향 평준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올 시즌 타이틀 경쟁은 예측불허다. 본지는 프로야구 해설위원 8명을 대상으로 2023시즌 MVP·홈런왕·다승왕 판도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다.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스토브리그 최고의 계약, 올 시즌 가장 주목하는 선수도 소개한다.
◇ 이정후 MVP·박병호 홈런왕 2연패 유력
설문에 참여한 해설위원 8명 중 5명이 이정후의 MVP 2연패를 점쳤다. 선택 배경은 대체로 비슷했다. 김동수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키움 팀 성적이 변수가 될 수 있겠지만, 이정후가 가장 유력한 MVP 후보라고 생각한다. 팀 득점력뿐 아니라 분위기(사기)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선수"라고 설명했다. 다른 해설위원들도 "현재 가장 뛰어난 선수 아닌가"라고 되물으며 이정후를 꼽았다.
이정후는 지난해 12월, 2023시즌을 마친 뒤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 입찰)으로 메이저리그(MLB)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대형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가 이끄는 보라스 코퍼레이션과 계약하기도 했다. 지난겨울에는 MLB 투수들의 빠른 공에 적응하기 위해 타격 자세도 바꿨다.
이종열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지난해 이정후는 (전년 대비 16개 더 많은) 23홈런을 기록했다. 대단한 변화다. 기술에 파워가 더해진 것이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를 치르며 경험이 더해졌고, MLB 진출을 목표로 삼아 동기 부여도 커졌다. 좋은 시즌을 보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홈런왕은 박병호가 총 7표를 몰아받으며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혔다. 2020~2021시즌 부진했던 박병호는 지난 시즌 홈런 35개를 치며 재기했다.
해설위원 대부분 한동희(24·롯데 자이언츠) 노시환(23·한화 이글스) 등 '거포 기대주'들의 성장을 기대하면서도, 홈런왕을 차지하기엔 경험이 아직 부족하다고 봤다.
이순철 SBS해설위원은 "박병호와 겨룰 수 있는 타자가 나와줘야 하는데 아직 보이지 않는다. 아쉬운 부문이다"라고 했다. 박용택 KBS N 스포츠 해설위원도 "3년 이내에 박병호보다 많은 홈런을 칠 수 있는 타자가 나올 수 있을까. 떠오르지 않는다"라고 했다. 양상문 스포티비 해설위원은 "한동희와 노시환이 지난해보다 많은 홈런을 칠 가능성은 높지만, 홈런왕 경쟁을 하기엔 경험이 부족해 보인다. 최정(36·SSG 랜더스)과 박병호의 2파전이지만, 지난 시즌 타이틀을 되찾은 박병호가 조금 더 유리할 것 같다"라고 전했다.
◇ 다승왕, 안우진-켈리 2파전
다승왕 판도는 투수 개인 기량뿐 아니라 득점 지원이나 수비력 등 팀 전력도 영향을 미친다. 해설위원들도 이 점을 주시해 의견을 냈다. 정민태 스포티비 위원이 2명을 꼽은 가운데 키움 에이스 안우진이 총 9표 중 4표를 받아 최다 득표를 했다. LG 트윈스 에이스 케이시 켈리(34)가 3표를 받아 2위에 올랐고, 아담 플럿코(32·LG)와 웨스 벤자민(30·KT)도 1표씩 받았다.
안우진은 지난 시즌 등판한 30경기에서 15승 8패·평균자책점 2.11을 기록, 리그 대표 선발 투수로 올라섰다. 시속 150㎞대 중·후반까지 찍히는 강속구와 날카로운 슬라이더 조합으로 상대 타자를 압도하며 탈삼진 224개를 솎아냈다. 고(故) 최동원이 1984년 기록한 종전 국내 선수 최다 기록(223개)을 넘어섰다.
올해는 지난 시즌보다 수직 무브먼트(vertical movement)가 10㎝ 정도 상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인 궤적보다 덜 떨어지는 공을 던지다 보니, 상대 타자 입장에선 마치 떠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안우진은 더 공략하기 어려운 투수가 됐다. 그는 지난 1일 한화와의 2023시즌 개막전에 선발 등판, 6이닝 동안 실점 없이 탈삼진 12개를 기록하며 호투했다.
양상문 위원은 "개인 기량만 보면 안우진의 다승왕 등극이 유력해 보인다. 키움 타선도 나쁘지 않다. 기동력이 좋은 선수가 많고, 이길 줄 아는 야구를 하는 팀이다"라고 전했다. 이순철 위원도 "국내 투수 중에선 안우진이 다승왕에 오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했다. 윤희상 KBS N 스포츠 해설위원도 안우진을 꼽았다.
정민철 MBC스포츠플러스 위원과 이종열 위원은 지난 시즌 다승왕(16승) 켈리에 한표를 던졌다. 이종열 위원은 "팀이 이겨야 선발 투수도 승수를 거둘 수 있다. LG 전력이 가장 강하다는 전제로 켈리가 다승왕이 될 확률이 가장 높아 보인다. LG는 불펜도 강한 팀"이라고 했다. 정민철 위원도 "팀 뎁스(선수층)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게 다승왕이기 때문에 켈리를 꼽는다"라고 했다. 정민태 위원은 안우진과 켈리에게 각각 1표씩 던졌다.
◇ 한화, 기대주 성장+이적생 가세 효과 기대
2023 스토브리그는 역대급으로 치열했다. 자유계약선수(FA) 14명이 유니폼을 바꿔 입었고, 다년 연장 계약을 선택한 각 팀 주축 선수도 많았다. 본지는 해설위원 8명에게 가장 기대되는 계약을 꼽아달라고 했다. 선수 이름값·계약 규모뿐 아니라 투자 대비 효과(가성비)도 두루 고려해 달라고 요청했다.
의외로 몰표가 나왔다. 지난 시즌까지 LG에서 뛰다가 기간 6년 총액 90억원에 한화와 계약한 채은성(33)이 5표를 받아 1위에 올랐다. 박용택 위원은 "(한화 기대주) 노시환이 스프링캠프 내내 채은성 옆에 붙어 다니더라. 한화는 구심점이 될 선수가 필요했다. 채은성이 그런 역할을 해줄 것 같다"고 했다.
양상문 위원도 "채은성이 LG에서 뛰면서 팀 리더였던 김현수로부터 많이 배웠을 것이다. 한화에서는 리더가 될 수 있는 선수다. '잘 데리고 왔다'라는 말을 들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김동수 위원은 "아무래도 LG 홈구장(잠실)보다는 홈런을 더 많이 칠 수 있는 구장(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더 많이 뛰기 때문에 채은성의 성적이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정민철 위원은 친정팀에 복귀한 리그 최고 포수 양의지(36)를 꼽았다. 정 위원은 "양의지가 두산 마운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그가 타선에 들어가면 지난 시즌 부진했던 김재환과 양석환도 살아날 것이다. 내가 두산을 5강 진입 후보로 꼽은 이유"라고 전했다.
해설위원들은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를 통해 잠재력을 드러냈거나 한층 성장했다고 확신하는 선수도 꼽았다. 한화 투·타 기대주 노시환과 문동주(20)가 각각 3표와 2표를 얻었다.
박용택 위원은 "노시환은 장타뿐 아니라 높은 타율까지 기록할 수 있는 선수다. 올 시즌 잠재력을 터뜨릴 것"이라고 했다. 정민철 위원도 "지난 몇 년 동안 실전을 통해 쌓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층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손혁 단장도 (노시환에 대한) 기대가 크더라. 그가 20홈런 이상 기록하면 한화 성적도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양상문 위원은 올 시즌 한화 선발진에 가세한 2년 차 투수 문동주를 주목하며 "투구 자세가 정말 예쁜 투수다. 계속 성장할 것 같다. 한화가 잘 키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민태 위원은 KIA 타이거즈 신인 투수 윤영철(19)을 꼽으며 "성장 가능성이 높은 투수가 특히 체인지업과 슬라이더가 좋다. (2021년 신인왕) 이의리만큼 활약할 것 같다"고 했다. 윤희상 위원은 "안우진만큼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빠르다"라며 두산 베어스 선발 투수 곽빈(24)을 주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