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7)부터 ‘킹메이커’(2022)를 지나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2023)에 이르렀다. 6년도 안 된 사이에 변성현 감독과 배우 설경구는 벌써 세 작품을 함께했다. 연출한 상업 장편영화가 앞서 언급한 세 작품을 포함해 5편밖에 되지 않는 변성현 감독은 절반 이상의 작품을 설경구과 함께했다.
그러다 보니 설경구에게는 ‘변성현의 페르소나’란 별명까지 붙었다. 변성현 감독은 “존경하는 영화계 선배에게 페르소나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며 조심스러워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설경구는 듣기에 나쁘지 않은 모양새다. 변성현 감독과 함께한 작품 인터뷰에서 그는 늘 변 감독에 대한 깊은 애정과 신뢰를 드러내왔다.
‘길복순’에서도 마찬가지다. 설경구는 영화 공개에 앞서 진행된 제작 보고회에서 변성현 감독의 작품에 계속해서 출연하는 이유에 대해 “내가 변 감독을 좋아하는 것 같다. 안 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사실 ‘길복순’은 변성현 감독과 설경구 사이에 캐스팅 이야기가 따로 오가지 않은 작품이다. ‘길복순’ 시나리오를 탈고한 어느 날 변 감독이 설경구에게 안부차 전화를 했고, 설경구가 “다 썼나 보네. 언제 한 번 집에 들러”라고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출연이 성사됐다. 두 사람 사이의 믿음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설경구는 변성현 감독에 대해 “머릿속에 그림을 다 그리고 필요한 만큼만 찍는 스타일이다. 군더더기가 없다. 변성현 감독의 촬영 스타일이 좋고,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과 합도 잘 맞는다”고 이야기했다. 변성현 감독은 앞서 ‘킹메이커’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설경구 선배가 내 작품에 자기 나이대 역이 있으면 그건 다른 배우가 못 한다고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변성현 감독 역시 설경구를 크게 믿고 기대고 있긴 마찬가지다. 매 작품마다 변 감독은 “설경구 선배는 연기를 끝내주게 한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누적 관객 1000만명을 돌파한 ‘실미도’(2003)를 비롯해 영화 ‘공공의 적’ 시리즈, 1132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한 ‘해운대’(2009) 등 기념비적인 작품에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쌓은 설경구는 변성현 감독에게 있어 한국영화계의 아이콘과 같은 존재다.
‘길복순’에는 이 같은 영화계 선배에 대한 변성현 감독의 존경심이 담긴 대사가 있다. “무딘 칼이 더 아프다”는 것이다. 청부살인업체 MK ENT 간부 차민희(이솜)가 소속 킬러 길복순(전도연)을 빗대어 “오래된 칼들은 날도 무뎌지고 쓸모가 서서히 없어진다”고 하자 대표이자 차민희의 오빠인 차민규(설경구)가 한 대답이다. 무디고 오래된 칼을 더욱 아프게 만드는 합. 변성현 감독과 설경구는 그렇게 계속 의미 있는 동행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