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디 레이드가 쓴 저서의 표지. 신디 레이드(Cindy Reid)라는 사람이 있다. 미국인이고 여성이다. 그는 어려서 가정 형편이 넉넉치 않았다. 감동을 주는 전설 속 주인공이 대부분 그렇듯이.
그는 다행히 몸은 튼튼했다. 그 덕에 소프트볼 팀에 들어가 장학금을 받아 대학을 겨우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는 초등학교 기간제 체육교사가 되었다.
그런 그가 골프를 처음 접한 것은 빠듯한 살림 덕분이었다. 그는 대중제 골프장(흔히 퍼플릭 코스라고 부른다)에서 시간제로 일을 하게 되었다. 친구가 소개한 자리였다. 그는 학교 근무를 마치고 나면 골프장에 가서 전동 골프 카트를 고쳐 만든 식음료 판매 차량을 몰고 코스를 돌아 다녔다. 이 홀 저 홀 다니다가 골퍼가 부르면 가서 음료수 따위를 파는 업무였다. 그렇게 일해서 받은 수당과 팁을 살림에 보탰다.
그렇게 되풀이하는 일상에 지쳐갈 즈음이었다. 친구가 그를 드라이빙 레인지(실외 골프 연습장)에 데려갔다. 그 친구는 제법 이름 있는 골프 교습가에게 골프를 배우고 있었다. 친구가 소개하자 교습가는 골프채 잡는 법을 간단히 알려 주더니 한 번 쳐보라고 했다. 신디 레이드는 있는 힘껏 공을 때렸다. 운명이었을까? 공은 딱 소리를 내뱉더니 허공을 가르며 멀리 날아갔다.
이 대목에서 뱁새 김용준 프로의 첫 스윙은 어땠는지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내 첫 스윙은 흠흠! 헛스윙이었다. 몇 번을 휘둘렀지만 골프 클럽은 번번히 허공을 갈랐다. 그런데도 나는 무엇에 홀렸는지 골프에 푹 빠져 급기야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프로 골퍼가 되었다. 그러니 누군가가 한 첫 스윙만 보고 그의 한계를 점치지는 말아야 한다.
아차, 얘기가 딴 데로 샜다. 다시 신디 레이드 얘기로 돌아가자.
신디 레이드는 골퍼라면 한 번쯤 느껴봤을 그 전율에 눈이 동그랗게 커졌을 것이다. 교습가는 골프를 배워보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신디 레이드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레슨비를 낼 여유가 없었다. 딱한 사정을 들은 교습가는 레슨비를 받지 않고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대신 “하는 둥 마는 둥 할 거면 다시는 자신을 찾아오지 마라”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나는 뜨끔했다. 나도 골프를 가르치지만 잇속을 따지지 않고 누구에게 마음을 연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서 내가 아직 5급 상주(商珠)에 머무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5급 상주라니? 무슨 이야기냐고 묻는다면 뱁새 김 프로 칼럼을 처음 읽는 독자임이 틀림 없다. 오늘이 벌써 3회째이니 이전 회를 꼭 읽어보기 바란다.
신디 레이드는 숙명과도 같은 골프 인생을 그렇게 시작했다. 그는 파트 타임으로 일하면서 받은 팁을 아껴 모은 1백50달러를 털어 지역 분실물 센터에서 헌 골프 클럽 세트를 마련했다. 그리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세 번씩 골프장에서 연습을 했다. 새벽에는 퍼팅 그린에서 퍼팅과 숏게임(대충 10~30m쯤 치는) 연습을 하고 학교로 일을 하러 갔다. 점심도 간단히 때우고 골프장에서 숏게임 연습을 했고. 숏게임 연습을 할 공간이 드문 한국에 사는 우리로서는 무척 부러운 일이다. 라운드를 하지 않는데도 공짜로 연습 그린을 쓸 수 있게 해 주는 골프장이 있다니!
그는 학교 근무가 끝나면 여전히 골프 코스에서 음료수 카트를 몰아야 했다. 그리고 나서야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레슨을 받고 롱게임을 연습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가 한 연습 방법은 듣기에도 애처롭다. 연습공을 실컷 칠 형편이 못 되었던 그는 하루에 단 한 바구니 밖에 칠 수가 없었다. 한 바구니에 단 돈 5달러였다는데. 많아 보았자 골프공 백 개도 안 들어가는 그 한 바구니로 그는 매번 두 시간 남짓 연습을 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연습 스윙을 여남은 번도 더 하고 나서야 공 한 개씩을 쳤다고 한다.
신디 레이드는 이런 식으로 무려 2년을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습했다. 그것도 한 번도 필드에 나가 보지 못한 채로. 그린피를 낼 형편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기회가 왔다. 교습가가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회원 둘과 라운드를 하는 자리에 그를 초대한 것이다. 그린피 낼 돈이 없다고 하자 자신이 내주겠다고 하면서까지 말이다.
그렇게 그는 인생 첫 라운드에 나섰다. 그것도 화이트 티(여자 프로 골퍼는 보통 화이트 티에서 플레이를 한다)에서 LPGA 프로 두 명과 함께. 신디 레이드가 그날 몇 타를 쳤는지는 다음 회에서 얘기할 수 밖에 없다. 허락한 지면이 다 찼으니.
‘뱁새’ 김용준 프로와 골프에 관해서 뭐든 나누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지메일로 메일(ironsmithkim)을 보내기 바란다.
▶김용준 KPGA 프로는
신문기자로 일하다가 사업을 하던 중 골프에 푹 빠졌고, 마흔 훌쩍 넘은 나이에 독학으로 KPGA 프로 선발전을 통과했다. 잠시 투어의 문을 두드리다가 이내 낙담하고 KPGA 코리안 투어 심판이 되었다. 판정을 하느라 이따금 TV에 옆 모습이 비치는 것으로 투어에 나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대신했다. 한동안 골프 채널 중계를 맡았고 골프 예능에도 출연했다. 지금은 모 대학 골프학과 겸임교수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