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MLB)에서 16년 동안 뛰었던 추신수(SSG 랜더스)가 KBO리그에서 첫 시즌(2021년)을 보낸 뒤 남긴 말이다. 특히 고영표의 체인지업에 대해 "마치 공이 없어지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고영표는 2021시즌 21번이나 퀄리티스타트(QS·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기록, 이 부문 리그 1위에 올랐다. 올 시즌 전반기에도 12회의 QS를 해내며 키움 히어로즈 안우진(13회)에 이어 국내 투수 2위를 지켰다.
고영표를 정상급 투수로 만든 무기는 체인지업이다. 2022시즌 체인지업 구사율은 46.9%(통계 전문 사이트 스탯티즈 기준)로 빠른 공(투심 패스트볼·35.5%)보다 더 많이 활용한다. 타자들은 그의 공 배합을 예측하고도 어설픈 스윙을 연발한다. 올 시즌 그의 체인지업 피안타율은 0.201에 불과하다. 2021시즌엔 0.188였다.
현장 지도자, 야구 전문가의 눈에도 고영표의 체인지업은 특별하다. 김태한 KT 투수 코치는 "소위 말하는 터널링이 좋다. 속구와 체인지업이 손에서 빠져 나와서 타자를 향하는 길이 똑같다가, 마지막에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했다. 피치 터널(투수가 공을 놓는 순간부터 타자가 구종을 분간하는 지점까지의 구간)에서는 고영표의 구종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양상문 스포티비 해설위원은 "공이 터널 구간을 지나 타자가 구종을 구분할 수 있는 지점을 릴리스 포인트로부터 9m로 가정한다면, 고영표의 체인지업은 이보다 최소 10~15㎝ 정도 더 날아가서 변화하는 게 분명하다"고 했다. 이어 "다른 우완 사이드암 투수들의 체인지업은 유선형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데, 고영표의 그것은 꺾이는 순간 각이 생기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도 말했다.
김원형 SSG 감독은 "팔을 더 끌고 가서 손가락으로 세게 누르는 것처럼 던질 때 좋은 변화구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의식적으로 릴리스 포인트를 앞에 두는 개념이라기보다는 공을 놓는 순간까지 잘 채서 던져야 한다는 얘기"라며 "고영표는 몸의 중심이동도 좋지만, 던지는 순간 힘을 잘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심수창 MBC 스포츠 플러스 해설위원은 고영표의 투구 자세를 주목했다. 그는 "투구할 때 손목을 반대(2루 방향)로 틀어 던진다. 마치 눌린 용수철이 튀어 오르는 듯이 말이다. 그래서 체인지업의 회전수가 상대적으로 많고, 움직임도 좋을 것이다. 타자들도 고영표 체인지업의 회전수 얘기를 하며 빠른 공과 구분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더라"고 전했다.
고영표도 자신의 투구 자세에 대해 "정우영, 서준원 등 빠른 공을 던지는 사이드암 투수를 보면 위에서 아래로 찍는 것처럼 팔을 스윙한다. 반면 나는 아래서 위로 때리는 느낌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테니스나 탁구에서 스핀을 주는 포핸드 스매시처럼 아래서 위로 쳐올리는 느낌이다. 그래서 체인지업을 던지기 적합한 움직임이 나온 것 같다"고 설명한 바 있다.
고영표를 고교 시절부터 지켜보고 대학(동국대)에서 지도한 김수훈 현 경민대 투수 코치는 "투수치고는 체격이 왜소해 증량을 권유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고영표가 4개월 만에 10㎏ 넘게 찌웠더라. '운동하지 못하는 밤이 싫다'고 말하던 선수다. 다른 투수들이 더 강한 구위를 위해 훈련할 때, 고영표는 체인지업과 속구 비율을 일대일로 하더라. 중학생 때부터 그런 것으로 알고 있다. 승부욕과 소신이 남다른 친구였다"고 돌아봤다.
김수훈 코치는 "고영표는 지금 잘 던진다고 해서 멈출 선수가 아니다. 더 발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고영표는 "올 시즌 무브먼트는 괜찮은데, 로케이션이 문제다. 현재 내 체인지업은 80점"이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