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 투수 김진호(24·NC 다이노스)의 체인지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야구통계전문업체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김진호의 체인지업 피안타율은 0.080(25타수 2안타·14일 기준)에 불과하다. 그는 개막전만 하더라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체인지업 덕분에 1군 필승조 멤버가 됐다. 강인권 NC 감독 대행은 "김진호의 장점은 체인지업"이라고 했다.
김진호는 '투 피치' 투수다. 투구 분석에 찍히는 구종이 대부분 직구(포심 패스트볼·51.2%) 아니면 체인지업(36%)이다. 단조로울 수 있는 패턴이지만 그에겐 '숨겨진 무기'가 더 있다. 상황에 따라 체인지업 스피드를 능수능란하게 조절, 하나 이상의 구종 효과를 본다. 110㎞/h대 후반부터 130㎞/h 초반까지 구속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김진호는 "체인지업 평균 구속이 127㎞/h 정도다. 그런데 볼카운트 잡을 때는 속도를 늦추고, 승부할 상황이면 130㎞/h 초반까지 던질 수 있다. 체인지업으로 완급 조절을 한다"고 했다.
잭 그레인키(39·캔자스시티 로열스)는 한때 미국 메이저리그(MLB)를 대표하는 파워 피처였다. MLB 기록 전문 사이트 팬그래프닷컴에 따르면, 2007년 그레인키의 직구 평균 구속은 94마일(151.2㎞/h)로 최소 120이닝을 소화한 리그 투수 중 상위 9위였다. 그러나 세월 앞에 장사 없었다. 그레인키의 직구 평균 구속은 2013년 91.7마일(147.5㎞/h)로 떨어졌고, 2018년에는 89.6마일(144.1㎞/h)로 측정됐다. 올 시즌에는 커리어 사상 최저인 88.6마일(142.5㎞/h)에 그친다.
직구 구속에 빨간불이 켜졌지만, 그레인키는 오히려 힘을 더 뺐다. 활로를 찾은 건 커브였다. 탁월한 손가락 감각으로 커브 구속을 조절, 구속 스펙트럼을 만들어냈다. 그레인키의 트레이드 마크 중 하나가 이퓨스(Eephus pitch)라고 불리는 초슬로 커브. 지난해 4월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전에서 51.5마일(82.8㎞/h) 이퓨스를 던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그레인키는 레나토 누네스 타석에서 체인지업→이퓨스→체인지업→커브로 범타를 유도했는데 2구째 이퓨스와 4구째 커브 구속 차이가 20.5마일(32.9㎞/h)에 달했다. 누네스는 "(그렇게 느린 변화구를)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광주 동성고를 졸업할 때만 하더라도 김진호의 주 무기는 슬라이더였다. 2017년 NC에 입단한 뒤 어느 날 "체인지업이 좋다"는 얘길 들었다. 잘 던지지 않아 몰랐던 재능을 뒤늦게 발견한 셈이다. 공교롭게도 슬라이더가 프로 무대에서 통하지 않자 체인지업 의존도가 높아졌고 자연스럽게 '체인지업 투수'가 됐다. 김진호는 "슬라이더가 되지 않으니까 체인지업을 던져야 하는 상황이 많아졌다. 지금은 직구가 잘 들어가서 체인지업도 같이 사는 것 같다"며 웃었다.
그의 야구 인생 터닝 포인트는 경찰야구단이었다. 2017년 11월 입대를 선택, 일찌감치 병역을 해결했다. 어깨 상태가 좋지 않아 휴식 기간이 길었지만, 이때 이한진 투수 코치와 상의해 투구 폼을 수정했다. 어깨 통증의 원인이었던 팔 스윙을 작게 만들었다. 그 결과 공을 놓는 순간적인 동작이 빨라졌고 공에 회전도 잘 걸렸다. 체인지업 무브먼트가 향상된 비결이다.
김진호는 "체인지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살살 던지면 안 된다. 직구처럼 똑같이 던져야 공에 회전이 많이 걸리고 브레이킹이 좋아진다"고 했다. 전역 후인 2020년 그의 체인지업 영상을 소셜미디어(SNS)에서 본 마커스 스트로먼(시카고 컵스)은 "말도 안 된다(ridiculous). 비행기를 타고 가서 빨리 배우고 싶다"며 극찬했다.
2015년 5월 그레인키는 "나는 투구마다 95마일(152.8㎞/h) 공을 던지려고 하지 않는다. 심지어 2스트라이크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모든 투구를 '베스트 피치'로 노력했는데 그게 (지금과 다른) 차이점"이라고 했다. 김진호는 지난 시즌 체인지업을 더 가다듬었고 속도 조절이 가능한 수준까지 올라섰다. 그레인키처럼 모든 투구를 '베스트 피치'로 하지 않는다. 주자 상황, 볼카운트 등을 고려해 결정적인 순간 힘을 준다. 그는 체인지업에 대해 "100% 만족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