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KBO리그 경기당 평균 실책은 8일 기준으로 1.71개다. 2000년대 들어 가장 높은 수치. 지난해와 비교해도 경기당 0.27개가 늘었다. 야구계 안팎에선 "실책이 많아도 너무 많다" "경기 수준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한화 이글스는 불명예 기록까지 갈아치울 기세다. 57경기에서 실책 57개를 기록, 현재 페이스라면 144개(144경기 체제)로 시즌을 마친다는 계산이 나온다. KBO리그 역대 한 시즌 최다 실책은 1991년 빙그레 이글스의 143개(126경기 체제). 다른 팀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4일 삼성 라이온즈-두산 베어스전에선 양 팀 합계 실책 6개(삼성 2개·두산 4개)가 쏟아졌다. 롯데 자이언츠는 지난달 21일 두산전에서 한 경기 실책 5개를 저지르기도 했다.
실책이 늘어난 원인은 복합적이다. A 구단 수비 코치는 '더블(멀티) 포지션'에 주목했다. 그는 "예전에는 수비가 완벽한 선수로 더블 포지션 작전을 폈다. 최근엔 팀 상황에 따라 더블 포지션을 선택한다"며 "야구 트렌드가 공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실점을 막는 것보다 득점할 수 있는 조합을 먼저 생각한다. 그 영향으로 (더블 포지션을 고려해) 선발 라인업이 작성된다"고 말했다.
올 시즌 야수 실책 1위 김지찬(삼성·12개)은 2루수와 유격수를 오간다. 류지혁(KIA 타이거즈·8개)은 1루수와 3루수, 김태연(한화·8개)은 2루수와 3루수에 우익수까지 병행한다. 경기에 따라 포지션 이동이 비일비재하다. A 구단 수비 코치는 "주 포지션 하나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것도 힘들다"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올 시즌 KBO리그에선 내야 세대교체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신인 듀오' 이재현(삼성·7개)과 김도영(KIA·6개)의 출전 시간이 적지 않다. 그동안 1군에서 기회를 잡지 못했던 김주형(키움 히어로즈·8개) 안재석(두산·8개) 같은 선수들도 팀 내 입지를 넓혔다. 리그에 새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데 수비에선 보완점이 뚜렷하다. 변형 패스트볼 증가에 따라 땅볼 비중이 커진 상황에서 내야 수비가 불안하니 실책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B 구단 수비 코치는 "실책 대부분이 송구에서 나온다"며 "최근 코로나19 영향으로 국내 스프링캠프를 진행하다 보니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간단한 캐치볼부터 수비(펑고) 연습량이 줄었다. 실책이 늘어난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훈련량도 그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C 구단 감독도 "그라운드 실책(포구)보다 송구 실책이 조금 더 많아지는 추세인 것 같다"고 비슷한 의견을 냈다.
D 구단 운영팀 관계자는 "리그에 수비가 뛰어난 전문 1루수가 부족하다. 외국인 타자도 1루수가 아닌 외야수나 내야 다른 포지션으로 구하지 않나. 불안한 송구를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1루수가 손에 꼽을 정도"라고 말했다. 과거 KBO리그에는 각 구단마다 이승엽·김경기 같은 전문 1루수가 포진했다. 자원이 부족하면 외국인 타자로 약점을 보완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현재 리그 전문 1루수는 박병호(KT 위즈)와 오재일(삼성) 정도다. 외국인 타자로 굳이 1루수를 고집하지도 않는다.
올해 KBO리그 스트라이크존(S존)은 예년과 다르다. '타고투저' 기조를 바로잡고 경기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S존을 확대, 적용하고 있다. E 구단 수비 코치는 "(실책 증가에) 변화한 S존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커진 S존(외곽)을 공략해서는 좋은 타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빗맞은 타구나 불규칙한 땅볼이 많이 나온다. 누적된 수비 데이터가 부족하다"고 했다. F 구단 수비 코치는 "야수들은 타자의 스윙 궤도나 타구의 첫 바운드 등을 항상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 부분이 (미숙해 실책 증가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흔히 "수비가 강해야 강팀"이라는 얘기를 한다. 올 시즌 선두 SSG 랜더스도 리그 최소 실책으로 순항하고 있다. 치열한 중위권 싸움의 향방을 가를 변수 중 하나로 '수비'가 거론되는 이유다. 어느 팀이 먼저 수비를 안정시킬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