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빛으로 염색한 머리는 한동안 김선빈(33·KIA 타이거즈)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그는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드러내는 편이었다. 운동선수치고는 키(165㎝)가 작은 편이라, 프로 데뷔 10년 차가 지나서도 '꼬꼬마'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김선빈은 그동안 '후배'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올 시즌은 무게감 있는 '선배'로 거듭나고 있다. 그는 지난 2월 선수단 투표를 통해 KIA의 새 주장으로 선출되며, 데뷔 15년 만에 처음으로 팀 리더를 맡았다.
김선빈은 새 임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 노력했다. 스프링캠프를 치르며 후배들과 대화를 많이 나눴고, 지도자와 선수 사이 소통 창구 역할도 잘해냈다. 김석환, 김도영 등 20대 초반 젊은 선수들은 "김선빈 선배가 밝은 분위기를 만들어줘서 훈련할 때도 도움이 됐다"라고 입을 모았다. 김종국 감독도 "(김)선빈이가 신인이었을 때 나와 방을 함께 썼다. 다른 선수보다 더 긴밀한 소통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전했다.
정규시즌이 개막한 뒤 김선빈은 부담감이 커졌다. 시즌 초반 개인 성적은 좋았지만, 팀은 하위권으로 처졌기 때문이다. 김선빈은 "아무래도 예년보다는 책임감이 커졌다. 팀 성적과 개인 성적에 따라 부담감도 달라지더라"라고 말했다.
경기력이 안 좋을 때는 주장이 선수단을 향해 따끔한 충고를 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김선빈은 젊은 선수들이 주눅 들까 봐 고민했다. 그는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이 많다 보니 팀 경기력이 어수선할 때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안 좋은 말을 하면 오히려 팀 분위기가 가라앉을 것 같더라. 그래서 말을 더 아낄 때도 있다"고 전했다.
주장이 된 김선빈은 신중해졌다. 행동에 앞서 생각이 많아졌다. 이젠 외적으로도 가벼워 보이지 않기 위해 신경 쓴다. 주기적으로 하던 염색도 자제하고 있다. 김선빈은 "머리색부터 달라졌다. 다들 나보고 '많이 변했다'라고 하더라. 자리(주장)가 사람을 만드는 것 같다"라며 웃어 보였다.
김선빈에게 가장 힘든 점을 꼽아달라고 하자, 그는 "다 힘들다. 말을 안 듣는 후배도 많다"며 농담 섞인 투정을 하더니 이내 "그래도 후배들이 선배들을 잘 따라와 준 덕분에 팀 성적도 조금씩 나아진 것 같다. (동갑내기 팀 동료) 나성범이 많이 도와주고 있다. 동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크다"고 진짜 속내를 전했다.
김선빈은 아직 '초짜' 캡틴이다. 스트레스가 경기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러나 김선빈은 "개인 성적이 떨어지면,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자세를 바꾸거나, 멘털 관리를 더 제대로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라운드에서의 플레이와 주장 임무 수행은 별개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