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현대산업개발(HDC현산개발)이 붕괴 사고가 난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의 전면 철거를 선택했다. 업계는 이 같은 선택이 HDC현산개발의 노림수라고 보고 있다. 하반기 등록말소 여부가 결정되는 가운데 전면 철거를 선택해 국면전환을 노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HDC현산개발의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쏟아부어야 할 돈은 많은데, 시공계약은 줄줄이 해지되고 있다. 회사 이미지도 추락했다.
초강수 둔 HDC현산개발
현대산업개발은 지난 4일 기자회견을 열고 올해 1월 발생한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 사고와 관련 붕괴한 동을 포함해 8개 동 847채를 전면 철거한 뒤 다시 짓는다고 밝혔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이날 "무너진 동뿐만 아니라 나머지 동의 안전 우려도 많았다"며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은 완전히 철거하고 새로 짓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됐다"고 말했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입될 전망이다. HDC현산개발에 따르면 철거부터 재시공까지 총 3700억 원의 비용이 소요된다. 향후 지체보상금 등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제기될 경우 손실은 더 커질 수 있다. 화정아이파크의 지체보상금은 연 6.5% 금리를 적용할 때 전용 면적 84㎡ 기준 가구당 1억 원 수준에 달한다.
기간도 만만치 않다. 회사 측은 철거 및 재시공, 입주까지 약 70개월(5년 10개월)을 잡았다. 보통 아파트 재건축 때 철거 후 준공까지 3년 안팎이 걸리는데, 이보다 2배에 가까운 시간이 걸리는 셈이다. HDC현산개발은 철거 과정 중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기 위해 공기를 길게 잡은 것으로 알려진다. 대규모 비용에도 전면 철거를 결정한 이유는 논란이 계속될수록 기업 가치와 이미지 하락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HDC현산개발이 이례적인 선택에도 반응은 엇갈린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개인 SNS에서 화정아이파크의 전면 철거와 관련한 언론 보도를 공유한 뒤 "전면 철거 재시공이라는 고뇌에 찬 결단이 우리나라의 안전문화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시민사회단체의 의견은 사뭇 다르다. 현대산업개발 퇴출 및 학동·화정동참사시민대책위는 4일 성명을 내고 "이번 조치는 존폐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업전략 차원에서 내려진 것이다. 이를 두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일로 포장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전면 철거 및 재시공을 빌미로 마치 HDC현산개발이 면죄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업계는 HDC현산개발의 이번 결정이 기업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보고 있다. A 건설사 관계자는 "전면 철거는 시간과 돈이 많이 드는 방법이다. 원래 붕괴하지 않은 건물은 정밀안전진단을 한 뒤 문제가 나오면 철거하겠다고 하지 않았나"라며 "다른 사업장의 공사를 원만하게 진행하고 향후 수주를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첩첩산중
건설업계의 시선은 HDC현산개발의 등록말소 여부가 결정되는 올 하반기에 모여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3월 HDC현산개발에 대해 건설산업기본법(건산법) 83조 최고 수위인 등록말소 처분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건산법은 고의나 과실로 부실하게 시공해 시설물 구조상 주요 부분에 중대한 손괴를 일으켜 공중의 위험을 발생하게 한 경우 등록말소 또는 영업정지 1년 처분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 하반기 행정처분을 내린다는 방침이다. 건설업계는 화정아이파크에서 발생한 사망자가 6명에 달해 법으로 등록 말소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HDC현산개발은 이미 지난해 발생한 광주 학동 사고로 8개월의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영업정지 위기는 가까스로 넘겼다. 그러나 아직 행정처분이 마무리되지 않아 앞날이 불투명하다.
들어갈 돈은 많은데 들어 올 길은 꽉 막혔다. 지난달 한국신용평가가 HDC현산개발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고, 한국기업평가도 등급을 'A+'에서 'A'로 하향 조정했다. 두 번에 걸친 붕괴 사고로 사업경쟁력과 영업수익성이 떨어진 탓이다. 이 가운데 시공계약 해지 사례는 늘어만 간다. 경기 광주 곤지암 역세권, 경기 안양 뉴타운맨션삼호 외에도 대전 도안 아이파크시티 2차 신축공사 계약이 해지됐다. 이미 수주한 정비사업 조합 측으로부터 시공사 참여 배제 요구를 받는 등 사업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김승준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광주 화정사고로 인해 전반적으로 공사 진행이 더뎌지고 있고, 올해 분양이 원활히 나타나기 어려워 내년과 내후년 매출액 감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영구적 사업가치 훼손으로 인해 사업 규모가 작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HDC현산개발은 등록말소를 피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HDC현산개발 관계자는 "등록말소는 재기와 신뢰 회복 기회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것만은 방지하고 싶은 것이 기본적 입장"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