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는 이대호(40·롯데 자이언츠)가 13경기 만에 마수걸이 홈런을 터뜨렸다. 부산 사직구장을 찾은 홈팬들을 열광케 한 이 홈런은 결승타였다.
롯데는 17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KT 위즈와 홈 경기에서 3-0으로 승리했다. 주말 3연전을 위닝 시리즈로 장식한 롯데는 7승 6패를 기록했다.
기다렸던 이대호의 시즌 첫 홈런이 결승타였다. 6번·지명타자로 출장한 이대호는 0-0이던 2회 말 KT 선발 투수 엄상백의 시속 143㎞ 몸쪽 직구를 걷어 올려 좌측 펜스를 훌쩍 넘겼다. 맞는 순간 홈런을 직감할 만큼 큰 타구(비거리 120m)였다.
이대호가 시즌 13경기 만에 때린 홈런이다. 이로써 2001년 롯데에 입단한 이대호는 KBO리그 17시즌 만에 개인 통산 홈런 단독 3위(352개)로 올라섰다. 역대 홈런 1~2위는 이승엽(467홈런·은퇴)과 최정(404홈런·SSG 랜더스)이다. 미국과 일본에서 5년간 활약한 이대호는 KBO리그 기록만으로 양준혁(351홈런·은퇴)을 4위로 밀어냈다.
이대호의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가 안타를 때리면 롯데는 어김없이 득점으로 연결했다. 이대호가 4회 말 무사 1루에서 중전 안타로 치고 나가자, 이후 롯데는 지시완의 적시타로 2-0을 만들었다. 6회 말 이대호는 선두타자 안타로 출루했고, 2사 1·3루에서 김민수의 적시타 때 3-0으로 달아났다. 이대호는 이날 4타수 3안타 1타점 2득점으로 맹활약했다.
타선에 이대호가 있었다면, 마운드에선 8과 3분의 2이닝 6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한 찰리 반즈의 활약이 돋보였다. 반즈는 시즌 3승으로 다승 공동 선두로 올라섰다. 탈삼진(28개)과 투구 이닝에서는 단독 1위(26과 3분의 1이닝)가 됐다. 투구 수 107개를 기록한 반즈는 3-0으로 앞선 9회 초 2사 1·3루 위기에 몰려 마운드를 내려왔다. 이어 임시 마무리 최준용이 등판해 헨리 라모스를 삼진 처리하고 경기를 매조졌다.
이대호는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한다. 지난해 1월 롯데와 2년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을 맺으면서 내세운 목표는 오로지 우승이다. 어린 시절부터 롯데를 응원하며 자란 그가 우승을 염원하는 팬들의 바람에 보답하기 위해서다. 그는 마지막 홈 개막전에 앞서 "더그아웃으로 들어갈 때 팬들이 함성을 질러주시고 손뼉 쳐주실 때마다 눈물이 나려고 한다"며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계속 드는 것 같아서 울컥한다. 롯데에서 사랑을 정말 많이 받았다. 팬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그라운드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롯데의 가장 최근 한국시리즈 우승은 1992년이다. 이대호는 KBO리그에선 한국시리즈 문턱조차 밟지 못했다.
롯데는 올 시즌 한화 이글스와 함께 '2약'으로 분류된다. 이대호는 이에 대해 "누가 '2약'이라고 하던가"라고 되물으면서 "우린 약한 팀이 아니다. 흐름을 타면 우리만큼 무서운 팀이 없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롯데 4번 타자'라면 이대호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는 항상 그 무게감을 안고, 유니폼을 벗는 날까지 4번 타자를 지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난해 외국인 래리 서튼 감독 부임 후 이대호는 3번 타자로 많이 나왔다. 올 시즌은 5번 또는 6번 타자로 자주 출전한다.
이대호는 타순에 연연하지 않고 묵묵히 스윙한다. 올 시즌 그의 타율은 0.383(47타수 18안타)로 아주 높다. 장타력이 전성기만큼은 아니지만, 특유의 부드러운 스윙으로 정확도를 유지하고 있다. 여전히 팀의 해결사이자 중심이다.
요즘 롯데 타자들은 그런 이대호를 위해 특별한 세리머니를 한다. 1루에 출루하면 손가락으로 인중을 스친 뒤 더그아웃을 가리킨다. 이대호를 상징하는 '손가락 세리머니'를 선수단 전체가 함께하는 것이다. 이대호는 동료들을 위해 공수 교대 때 가장 앞에 서서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는 후배들을 맞이한다. 이대호는 "마흔 살이 넘어가니 사소한 일에 눈물이 난다. 경기 나오면서도 '이제 진짜 마지막이구나' 이런 생각을 계속한다. 섭섭한 마음이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