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재계와 정치권·정부기관의 스킨십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재계 최고경영자(CEO)가 대선 후보를 차례로 만나는가 하면 ‘재계의 저승사자’라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수장과도 만남을 갖고 소통을 넓히고 있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대한상공회의소가 현재 국내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로 인정받고 있다. 과거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이 '재계 맏형' 역할을 해왔지만 2016년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삼성, SK, 현대차, LG 4대 그룹이 모두 전경련을 탈퇴하면서 대한상의가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대한상의는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이 지난해 수장을 맡으면서 더욱 입김이 세지고 있다. 각계각층과 적극적인 소통을 예고한 최 회장은 임인년 새해부터 각종 정부 행사에 참여하는 등 바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13일에는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과 만나 관심을 끌었다. 이날 대한상의는 공정위와 경제계 정책간담회를 가졌다. 최 회장은 지난달 공정위 심판정 이후 조성욱 위원장과 또다시 조우하며 스킨십을 이어갔다. 이날 자리에서는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공영운 현대차 사장, 하범종 LG 사장, 조현일 한화 사장 등 주요 기업의 CEO들도 참석해 정책 토론을 벌였다.
공정위를 시장 질서를 유지하는 '파수꾼'이자 '경제 검찰'로 표현한 최 회장은 “세계적으로 산업과 시장판도가 급격하게 재편되는 현재 상황에서 우리가 세계시장의 공급자가 되느냐, 수요자가 되느냐에 따라 국가의 명운이 크게 엇갈릴 것”이라며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에서 불리한 점이 없도록 공정거래 정책의 탄력적 운영을 바란다”고 요청했다.
그러자 조 위원장은 “새싹이 나오고, 어려움을 겪으며 큰 나무가 되고, 다른 나무와 함께 정원을 이루는 구성원이 되면 정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며 “새로 진입한 기업이 독점적 사업자로부터 보호받으며 시장경제를 키우는 것이 공정위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다양한 경제 주체와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단체 수장들은 바뀐 공정거래법, 중대재해법 등으로 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을 관철하는 데 집중했다.
또 최근 화두로 떠오른 온라인 플랫폼의 독점과 관련한 논쟁도 오갔다. 조 위원장은 “모빌리티, 온라인쇼핑 분야의 자사 우대 등 플랫폼 거래에서의 독점력 남용을 집중적으로 모니터닝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4일에는 ‘경제계 신년인사회’를 열었다. 김부겸 국무총리와 송영길 민주당 대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등 정치권 인사를 포함해 100여 명이 참석했다.
지난 12일에는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함께하는 10대 그룹 CEO 토크 행사를 가졌다. 손 회장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비해 국내 기업 규제가 너무 많다. 기업 규제와 조세 부담을 완화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달라”고 요청했다.
경제단체장들의 정치권과의 소통은 긍정적으로 해석된다. 최 회장은 지난해 대한상의 수장으로 취임하면서 ‘협력의 새 파트너십 마련’을 약속했다. 이를 위해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며 소통을 늘려나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전보다 재계와 정치권의 만남이 잦아졌다고는 얘기할 수 없다"며 "정책 토론과 소통 등도 중요하지만, 경제 수장들은 중대재해법과 같은 난제를 푸는 결과물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