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프로농구 신한은행의 돌풍을 이끄는 동갑내기 한채진(왼쪽)과 곽주영. [사진 신한은행] “우리 둘 나이를 더하면 74세예요. 그래도 코트에서는 20대처럼 뛰려고요.”
올 시즌 여자프로농구 인천 신한은행의 돌풍을 이끄는 ‘맏언니 듀오’는 실력만큼이나 입담도 좋았다. 인터뷰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시즌 전 중위권 전력으로 분류됐던 신한은행은 예상을 깨고 2위(6승 3패)에 올라있다.
가장 먼저 나와 팀 훈련을 준비하던 한채진(37·1m75㎝)은 “몸 상태가 20대 때와 다르고, 30대 초반과도 다르다. 가끔 훈련하다 힘들 때가 있지만, 후배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이를 악문다”고 말했다. 곽주영(37·1m83㎝)은 “나는 채진이와 다르다. 그냥 힘들어한다”고 받아쳤다. ‘농구 도사’ 같은 두 사람을 최근 인천 도원동 신한은행 체육관에서 만났다.
1984년생 동갑내기 한채진과 곽주영은 올 시즌 여자프로농구 등록 선수 중 최고령이다.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한채진 혼자 맏얻니였는데, 개막 직전인 지난달 22일 은퇴했던 곽주영이 2년 만에 복귀하면서 ‘맏언니 듀오’가 결성됐다.
국가대표 센터 출신 곽주영은 2018~19시즌까지 7시즌 동안 신한은행 유니폼을 입은 레전드다. 구나단 감독이 팀 리빌딩 과정에서 구심점 역할을 해줄 선수라고 판단, 그의 코트 복귀를 요청했다. 곽주영은 프로 은퇴 후 사천시청에서 실업팀 선수로 활약 중이었다.
곽주영은 “감독님이 전화하셔서 ‘우리 센터진에 네가 필요해’라고 하셨을 때 ‘내가 경기 흐름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고민하느라 며칠 밤을 새웠다. 그때 채진이한테 문자 한 통을 받았다. ‘빨리 와라’ 한마디였다. 그 말에 복귀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한채진은 “혼자 코트 안팎에서 리더 역할을 하기 쉽지 않다. 후배들에게 모범이 돼야 하고, 경기력도 좋아야 하는 등 책임감이 컸다. 주영이가 와줘서 고민도 이야기할 수 있고 부담을 반으로 줄었다”며 반겼다. 평소 차분하고 진지한 한채진이 ‘아빠’처럼 팀 분위기를 이끌고, 활발한 곽주영이 ‘엄마’처럼 후배들을 다독이는 역할을 맡았다. 곽주영은 “둘이 같이 뛴 적이 거의 없어서 이전엔 데면데면했다. 그런데 요즘은 출퇴근을 같이하고 틈만 나면 같이 밥 먹고 커피도 마신다. 가장 친한 친구”라고 자랑했다.
‘곽주영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한채진은 올 시즌 코트에서 펄펄 날고 있다. 경기당 평균 스틸 1.56개로 이 부문 공동 1위다. 한채진은 지난 22일 2021~22시즌 정규리그 디펜딩 챔피언 용인 삼성생명전(76-59승)에선 9득점 11리바운드 4어시스트로 맹활약했다. 그는 지금도 저녁 시간마다 점프 슛 100개를 추가로 쏠 만큼 지독하게 훈련한다.
곽주영도 예상보다 빨리 실전 감각을 회복 중이다. 웨이트트레이닝장에서 근력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지난 20일 아산 우리은행전(74-75패)에서 11득점 6리바운드로 공·수에서 고른 활약을 했다. 곽주영이 가세하면서 리바운드 부담이 줄어든 에이스 김단비의 득점력이 폭발했다. 김단비는 평균 22.4득점으로 리그 전체 1위다.
한채진은 “주영이가 오면서 이렇게 팀 분위기가 달라질 줄 몰랐다. 다른 선수들까지 살아났다”고 칭찬했다. 그러면서 “이런 경우 신인 선수들에겐 ‘복덩이’라는 말을 붙이는데, 주영이는 뭐라고 불러야 할지…”라며 웃었다.
올 시즌 두 사람의 눈은 정상을 향하고 있다. 한채진은 “만화나 영화에 보면 팀을 떠났던 베테랑이 어느 날 갑자기 복귀해 동료들과 힘을 합쳐 우승하는 스토리가 나온다. 주영이와 만화 같은 스토리를 한번 쓰고 싶다”고 말했다. 곽주영도 “친구와 우승하는 멋진 마무리를 꿈꾼다”며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