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에바스(오른쪽)과 이강철 감독의 케미스트리는 KT 마운드를 단단하게 만든다. [IS포토] KT와 삼성의 페넌트레이스 1위 결정전이 열린 10월 31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 KT 선발 투수로 낙점된 윌리엄 쿠에바스(31)는 경기 전부터 여유가 넘쳤다.
헤드폰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탔고, 동료들을 향해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관중이 들어찬 경기장을 보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단두대 매치'에 나서는 선발 투수지만, 긴장감은 엿보이지 않았다.
이 모습을 본 이강철 KT 감독이 쿠에바스를 불러세웠다. '조금 차분하게 경기를 준비하자'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쿠에바스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나는 매니저(감독)가 너무 심각해 보인다. 나는 (1위 결정전에 나서는) 지금 상황이 즐겁다. 심플하게 던지려고 한다"라며 자신을 믿어주길 바랐다.
이 말을 들은 이강철 감독은 "나도 (심각해 보인다는) 네 말을 인정한다"라며 웃어 보인 뒤 "이렇게 중요한 경기를 앞둔 상황에서 감독은 작은 부분까지 아우르지 않을 수 없다. 너도 나를 이해해달라"라며 쿠에바스를 달랬다.
이 감독은 쿠에바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쿠에바스는 10월 28일 NC전에 등판, 공 108개를 던지며 7이닝을 막았다. 그런 투수를 사흘 만에 다시 내세웠다. 쿠에바스는 올 시즌 삼성 타선에 강했고, 초반 기세 싸움을 맡겨야 했다. 이기기 위해 '혹사' 논란을 감수했다.
이 대목에서 이미 쿠에바스를 향한 이강철 감독의 믿음을 엿볼 수 있다. 경기 전 전한 메시지는 노파심이 아닌 격려였다. 이에 선수는 '감독님도 이 상황을 즐기길 바란다'라며 응수했다.
쿠에바스는 자신감을 결과로 증명했다. 1위 결정전에서 7이닝을 실점 없이 막아냈다. 투구 수는 99개. 나흘 동안 207개를 던졌지만, 마지막 공까지 힘이 있었다. KT는 6회 초 터진 강백호의 선취 타점을 지켜내며 1-0으로 승리, 창단 처음으로 정규시즌 정상에 올랐다. 경기 뒤 쿠에바스는 "이닝을 채울수록 아드레날린이 분출됐다. 몸 상태는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이강철 감독은 쿠에바스가 경기를 지배했다. 3일 휴식 후 등판이라 힘들었을 텐데 팀을 위해 희생하며 최고의 피칭을 보여줬다"고 극찬했다.
이강철 감독과 쿠에바스의 관계는 묘하다. 3년째 '밀당' 중이다.
쿠에바스가 입단한 첫 시즌(2019)에는 볼 배합을 두고 이견이 있었다. 이강철 감독은 불리한 볼카운트나 실점 위기에서 유독 빠른 공으로 정면 승부를 고집하는 쿠에바스의 성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즌 초반 12경기는 지켜보다가, 6월 9일 롯데전을 앞두고 면담을 진행했고 "갖고 있는 좋은 커브를 잘 활용하는 게 좋겠다"라고 설득했다. 쿠에바스와 이강철(가운데) KT 감독이 투구 내용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다. 쿠에바스는 "더 디테일하게 승부하겠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선수 생활 내내 추구하던 방식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일시적으로 변화구 구사율을 높였다가, 다시 정면 승부를 고집했다. 사령탑의 권고를 무시한 건 아니다. 이강철 감독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2020시즌부터는 쿠에바스의 빠른 공 의존도가 너무 높아 보일 때만 조언했다. 이제는 적정 수준에서 합의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에는 보직 전환을 두고 대립했다. 이강철 감독은 쿠에바스를 불펜 투수로 돌리려고 했다. 쿠에바스의 컨디션이 안 좋았고, 우완 사이드암 엄상백이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하며 선발진에 가용할 자원이 생겼기 때문이다. 쿠에바스에게 걸린 옵션 계약 조항을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할 만큼 진지하게 추진했다.
선수는 보직 전환을 바라지 않았다. 이 감독은 "쿠에바스가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민하는 것 같다. 일단 타이트한 일정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선발로 쓸 것"이라며 불펜 전환 계획을 철회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이 자극제가 된 모양새다. 위기감을 느낀 쿠에바스는 6월 25일 한화전에서 완봉승을 거뒀고, 이후 4경기도 모두 호투하며 반등했다. 결과적으로는 KT 선발진은 조금 더 탄탄해졌다.
치열한 프로의 세계. 감독과 선수 사이에도 오해와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언어 장벽이 있는 외국인 선수와의 소통은 더 어렵다. 하지만 KT는 남 얘기다. 쿠에바스와 이강철 감독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스스럼없는 대화를 요청한다.
이제는 서로의 성격 개조까지 챙길 정도. 이 감독은 쿠에바스가 진지한 태도를 갖길 바라고, 쿠에바스는 이 감독이 성적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그리고 이 묘한 관계의 시너지 효과는 KT의 창단 첫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