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에 이어 경차 캐스터에도 '10년(120개월) 할부' 카드를 꺼내 들었다. 고객의 초기 차량 구매부담을 줄여 판매량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전속 금융사(현대캐피탈)의 수익도 올리는 '꿩 먹고 알 먹기'를 위해서다.
다만 장기 할부에 따른 비용(이자)은 소비자의 몫으로 남는다. 캐스퍼의 경우 차량 가격의 17%가 이자로 붙는다. 이에 일부에서 현대차가 초장기 할부를 앞세워 고객에 '이자 장사'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하루 3000원 내고 캐스퍼 타세요"
6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지난달 29일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캐스퍼’를 출시하면서 '10년 할부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초기 구매 부담을 낮추기 위해서 선보인 이 할부 프로그램은 하루 약 3000원만 내면 캐스퍼 기본 모델을 살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는 3040 직장인의 평균 교통비 지출액 절반 수준이다.
실제 신한은행이 전국 20~64세 경제 활동자 1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30~40대 미혼 가구의 월평균 교통비는 17만원이다. 주5일 출근하는 직장인의 경우 하루 평균 지출하는 교통비가 8000원가량이다.
현대차 캐스퍼는 차량 가격의 30%를 선납하면, 잔금에 대해 4.6% 금리에 10년(120개월) 할부를 제공한다. 이를 적용하면 1385만원인 기본 모델(스마트 트림)의 경우 415만5000원을 선납하고 나면 매월 10만945원을 내면서 차량을 이용할 수 있다. 원금과 이자의 합계는 3365원에 불과하다.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쇼트 사이즈 1잔이 3600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하루 커피값 한 잔만 아끼면 캐스퍼를 살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옵션을 추가하면 그만큼 가격도 올라간다. 캐시퍼 1.0 터보 액티브 모델을 풀옵션 구매할 경우, 617만원을 선납하면 월 상환액은 14만9900원이다. 매일 5000원 정도만 내면 풀옵션 경형 SUV를 살 수 있는 셈이다.
앞서 현대차는 지난해부터 고급차 제네시스에도 10년 장기 할부를 적용 중이다. 기존 60개월인 할부 기간을 최대 120개월까지로 대폭 늘린 것이 특징이다. 금리는 경우에 따라 다른데, 최소 4.6% 수준이다.
이를 통해 4791만원인 중형 SUV GV70 기본 모델(가솔린 2.5 터보)을 선납금 10%(479만원) 납입 후 구매할 경우 매달 약 45만원만 내면 된다. 고객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옵션인 AWD(사륜구동 시스템·300만원)와 파퓰러 패키지2(720만원)를 더하면 매월 부담금은 약 55만원으로 늘어난다.
자동차 교체주기 5~7년인데 10년 할부 왜?
우리나라는 자동차를 타는 기간이 짧으면 3년 이내, 평균 5~7년 정도로 교체주기가 빠른 편이다. 그런데도 현대차가 10년 장기 할부 프로그램을 꺼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먼저 장기 할부로 월 납입금액을 낮추면 판매량을 보다 손쉽게 늘릴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월 납입금이 부담스러운 사회초년생들에게 초장기 할부 프로그램은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다"며 "현대차가 캐스퍼를 출시하며 10년 할부를 제공하는 것도 캐스퍼 흥행을 위한 포석"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짭짤한 '이자 수입'은 덤이다. 현대차는 전속 금융사인 현대캐피탈과 할부를 진행한다. 이 경우 현대캐피탈은 할부금융 자산을 확보할 수 있고, 또 기간이 긴 만큼 이자 수입도 많아진다.
실제 캐스퍼 기본 모델 스마트 트림을 10년 할부로 구매할 경우 총 지출비용은 총 1626만8400원이 돼 약 242만원을 더 낸다. 풀옵션의 경우 약 359만원의 이자를 추가 부담해야 한다. 차량 가격의 약 17%에 해당하는 추가 지출이 발생하는 셈이다. 여기에 유류비·보험료나 차량 운행 시 소모하는 부품·보수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고가 브랜드 모델인 제네시스 GV70의 경우 이자가 더욱 늘어난다. 선수금 없이 기본 모델 구매 시 총 지불 비용은 5986만1255원으로 약 1195만원을 더 내야 한다. 앞서 인기 옵션을 넣은 모델의 경우 이자가 약 1449만원으로 늘어난다. 이는 차량 가격의 약 25%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에 일부에서는 현대차가 '과도한 이자 장사'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캐피탈 업체 관계자는 "금융사 입장에서 할부는 매달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자산이라는 점에서 기간이 길면 길수록 좋다"며 "다만 너무 길면 오히려 리스크가 높아질 수 있어 5년을 최적으로 보는데 현대차와 현대캐피탈이 10년 할부에 나서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소비자 입장에서는 주의가 필요하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차량 가격을 긴 기간 나눠내서 언뜻 보면 큰 부담이 아닌 것처럼 홍보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차량 가격의 10~20% 이상을 할부 이자로 뽑아가고 있다"며 "장기할부의 경우 진입장벽이 낮아 접근이 쉽지만 수백만 원대의 이자 부담이 생기는 만큼 세심한 비교·체크는 필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