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LG그룹 회장이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그룹의 체질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누적 5조원대 적자의 늪에 허덕였던 모바일(MC) 사업부를 철수한 것도 그 일환이다. 그렇지만 5년 연속 적자를 내며 또 하나의 아픈 손가락으로 꼽히는 전장사업(VS:Vehicle components Solution) 분야에서는 여전히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구광모 회장의 이런 역발상 승부수가 통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전장사업은 LG그룹 내에서 손실을 보더라도 계속해서 키워야 할 미래 먹거리로 분류되고 있다. 지난 23일 LG전자가 자동차 사이버 보안 기업 사이벨럼(이스라엘)의 지분 인수를 체결한 데서 구광모 회장의 의중은 여실히 드러난다. LG전자는 우선적으로 확보한 지분 63.9%에 신주투자 계약까지 더하면 이번 사이벨럼 인수에 1억1000만 달러(약 1300억원)를 투자할 것으로 보인다.
2016년 설립된 사이벨럼은 직원 50여 명 정도의 스타트업 수준이지만 LG의 전장사업 확대를 위한 파트너로 선정됐다. 사이벨럼은 자동차 사이버보안 관련 취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솔루션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김진용 LG전자 VS사업본부 부사장은 "이번 사이벨럼 인수로 미래 커넥티드카 시대를 체계적으로 준비해 온 LG전자의 사이버 보안 경쟁력을 글로벌 시장에 선보일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LG CNS의 자회사인 V-ENS를 170억원에 인수·합병하면서 전장사업이 본격화됐다. 자동차 엔지니어링과 부품 설계 전문인 V-ENS의 역량은 인포테인먼트 분야에 흡수됐다. 이후 LG는 굵직한 인수·합병(M&A) 등 2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으며 전장사업 키우기에 나섰다.
2018년 8월 차량용 조명시장의 선두업체인 ZKW를 인수했다. ZKW 인수 금액은 1조4400억원으로 LG그룹의 역대 M&A 최대 규모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처럼 LG는 전장사업을 미래의 캐시카우로 성장시키겠다는 복안으로 통 큰 투자를 결정했다.
2020년에는 세계 3위 자동차 부품업체인 마그나 인터내셔널의 인수에 나섰다. 5016억원 투자해 올해 7월 합작법인인 엘지마그나 이파워트레인이 출범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LG전자의 전장사업은 크게 인포테인먼트, 전기차 파워트레인, 차량용 조명 3개축으로 나뉜다. ‘커넥티트카 시대’ 전환 가속화에 따라 전장사업의 사이버 보안은 더욱 중시되고 있다. LG전자는 사이벨럼의 사이버 보안 역량을 통해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에 신뢰도 높은 부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ZKW는 세계적인 기술력으로 앞세워 BMW와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등 완성차 업체를 주 고객으로 확보하고 있다. 마그나 역시 제네럴모터스·포드·크라이슬러·BMW·폭스바겐 등 미국과 유럽의 완성차 업체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전기차 시장의 급성장세로 모빌리티 솔루션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시장 조사업체인 IDC에 따르면 모빌리티 솔루션은 2022년 1조8000억 달러(약 2116조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앞으로 전장부품의 통합 솔루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커넥티드 기술력과 보안이 '고객 신뢰'를 얻기 위한 핵심 키워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구광모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고객 신뢰를 유달리 강조했다. 그는 “고객의 모든 경험 여정을 세밀히 이해하고, 고객의 삶에 더 깊이 공감해야 한다”며 “기존의 틀과 방식을 넘는 새로운 시도가 중요한 차이를 만들고 비로소 고객 감동을 완성한다”고 말했다. 올해 임원 회의에서는 전장사업을 인공지능(AI)와 함께 미래 먹거리로 꼽기도 했다.
LG의 VS사업본부는 2016년부터 5년 연속으로 적자를 내고 있다. 지난해 적자는 3675억원까지 불어났다. 긍정적인 건 매출도 지속적인 성장세라는 점이다. 2016년 2조7730억원이었던 매출은 2020년 5조8015억원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LG는 전장사업의 성장세로 내년부터 흑자 전환을 바라보고 있다. ‘애플카’의 공급 파트너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시대를 맞아 모빌리티 솔루션 시장도 급속도로 성장할 것"이라며 "아직 뚜렷한 리딩업체가 없어서 LG를 비롯해 삼성·현대차 등 글로벌 기업들이 각축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