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대표팀이 지난 7일 도쿄올림픽 동메달결정전에서 도미니카공화국에 패해 메달 없이 돌아오게 됐다. 경기를 지켜보면서 내가 더 마음을 졸였고, 파이팅도 많이 외쳤는데 무척 안타깝다. 그래도 이제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다른 나라와 격차가 예전보다 더 벌어진 게 느껴졌다. 이제 우리나라는 예전처럼 국제대회에서 좋은 경쟁력을 기대할 만한 처지가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일본 야구는 갈수록 발전하는 게 보인다. 웬만한 투수가 다 시속 155㎞ 빠른 공을 던진다. 한국 타자들이 치기 쉽지 않다. 다른 나라도 메이저리그 출신 선수들이 많아 실력이 만만치 않다. 반면 한국 대표팀은 가기 전부터 상황이 어렵긴 했다. 이런저런 변수 탓에 베스트 멤버를 꾸리지 못했다. '힘든 대회가 되겠다'는 예감은 했지만, 결과가 생각보다 더 좋지 않았다. 한국 야구가 다시 '도전자'로 돌아갈 때가 됐다는 점을 확인했다.
물론 선수들만 야구를 열심히 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선수가 최선을 다하는 건 기본이고, 앞으로는 KBO와 10개 구단도 선수들과 함께 삼위일체가 돼야 할 것 같다. 한 곳을 함께 바라보면서 '어떻게 해야 KBO리그가 더 탄탄하게 발전할지', '국제대회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지' 다같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또 야구인 선배들과 후배들 모두 '나는 한국 야구 발전을 위해 뭘 했는지' 돌아봤으면 좋겠다.
사실 우리가 일본을 국제대회에서 당연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일본은 야구 저변이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이 넓다. 우리나라도 A급 선수들은 일본 대표팀에 뒤지지 않는데, 그 A급 선수가 일본엔 몇 배 더 많이 있다는 차이가 있는 거다.
여기에 더해 한국 야구는 국제대회에 앞서 좀 더 세밀한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한국 타자들이 생소한 투수들 공략에 애를 먹는 모습을 보고 느낀 부분이다. 요즘은 전력분석이 야구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각 구단에 전문화된 전력분석 인력도 있다. 국제대회처럼 처음 보는 선수들을 계속 만날 땐 전력분석의 도움이 더 필요한데, 한국은 그런 부분에서 준비가 좀 덜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2019년이었던가, 대전에서 경기를 할 때 이나바 아쓰노리 일본 대표팀 감독이 관중석에 찾아왔다. 올림픽 전력분석을 위해 각 구장을 돌아다니는 중이라고 하더라. 정확히 몇 명인지는 몰라도, 최소 열댓명은 돼보이는 인원이 우르르 몰려와 영상도 찍고 감독에게 수시로 이런저런 보고를 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또 미국전에서는 상대 중견수가 경기 중 유니폼 주머니에서 수첩 하나를 꺼내 이것저것 확인한 뒤 다른 야수들의 수비 위치를 조정하는 장면을 봤다. 미국은 시프트도 그렇고, 포수 리드도 그렇고 한국에 대해 철저히 준비한 것 같았다. KBO리그 경기에서도 그런 방식으로 데이터를 참고하는 선수들이 꽤 있는데, 국가대표팀에서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이제 한국 특유의 근성과 정신력만으로 야구를 하는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데이터 시대다.
돌이켜보면 일본 야구대표팀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노 메달'에 그쳤다. 아시아 야구 최강국이라고 자부했는데, 한국 때문에 국제 무대에서 수모를 당한 거다. 일본은 그때부터 국가대표팀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면서 한국에 설욕할 준비와 노력을 해왔다. 그리고 이번 올림픽에선 결국 우리가 일본에 참패를 당했다.
한국 선수들도 이제 현실을 직시했을 거라고 본다. 위기를 맞았지만, 이 아픔을 기회로 삼아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더 발전할 수 있게 노력했으면 좋겠다. '이미 늦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다음 국제대회는 모두가 삼위일체로 차근차근 준비해서 꼭 명예를 회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