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리가 포스트 '좌완 트로이카' 시대의 주역으로 기대받고 있다. 게티이미지 이승엽의 후계자는 찾지 못했다. 그러나 포스트 좌완 트리오 시대는 열렸다. 도쿄올림픽에서 확인한 한국 야구의 숙제와 위안이다.
한국 야구가 무너졌다. 5일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미국과의 2차(패자) 준결승전에서 2-7로 완패했다. 5회까지 1득점에 그치며 1-2로 끌려갔고, 6회 수비에서 투수 4명을 투입하고도 5점을 내주며 무너졌다. 이름값 있는 타자들은 전세를 뒤집지 못했다. 벤치의 투수 교체 의도도 의구심만 남았다.
한국은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 야구 부흥기를 열었다. KBO리그는 800만 관중 시대가 도래했다. 그러나 선수 몸값 거품 현상과 각종 사건·사고가 이어지며 위기에 놓였다. 이런 상황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까지 닥쳤다. 도약 발판으로 기대됐던 도쿄올림픽은 최악의 시나리오로 흘렀다. 일본에 이기지 못했고, 미국에 패하며 결승전에서 설욕 기회마저 잃었다.
야구 내적으로도 풀지 못한 숙제가 많다. 우선 붙박이 4번 타자를 찾지 못했다.
그동안 대표팀 4번 타자는 일본 격파를 주도했다. 베이징올림픽 이승엽이 그랬고, 프리미어12 이대호가 그랬다. 김경문 대표팀 감독은 대회 개막에 앞서 2021 KBO리그 전반기 타율 1위(0.395) 강백호를 새 4번 타자로 낙점했다.
강백호는 첫 경기 이스라엘전과 두 번째 경기 미국전에서 침묵했다. 결국 4번에서 2번으로 전진 배치됐다. 강백호는 1일 도미니카공화국전에서 2루타로 첫 안타를 신고했고, 2일 이스라엘전에서는 4안타를 치며 기대감을 높였다. 그러나 결승 진출이 무산된 미국전에서는 두 차례나 득점권에 주자를 두고 침묵했다.
강백호에 이어 4번 타자로 나선 양의지도 침묵했다. 그는 KBO리그 전반기 홈런 공동 1위. 현역 최고의 포수이자 우승 청부사다. 그러나 도미니카전에서는 희생플라이 타점 1개에 그쳤고, 한국이 11-1 콜드게임 승리한 2일 이스라엘전은 5타수 1안타, 4일 일본전은 삼진만 4개를 당하며 침묵했다.
미국전에서는 김현수가 나섰다. 김현수는 전날 일본전에서 동점 적시타를 쳤다. 이 대회 타율 0.455를 기록하며 맹타를 휘둘렀다. 그런 김현수조차 5일 미국전에서 4번 타자로 나섰지만, 무안타에 그쳤다.
이승엽은 베이징올림픽 일본과의 준결승전 8회 초 역전 투런 홈런을 치고 6-2 승리를 이끈 뒤 인터뷰에서 눈물을 보였다. 후배들에게 미안했다며. 그만큼 중압감이 높은 자리가 4번 타자다. 계보를 이어온 한국 야구 대표 타자들은 이겨내며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도쿄올림픽에서는 새 4번 타자를 찾지 못했다.
4번 타자만 맡으면 침묵하는 KBO리그 대표 선수들. 게티이미지 반면 마운드는 희망을 봤다. 신인 투수 이의리가 에이스 자리를 예약했다. 이의리는 5일 미국전에 선발 등판, 5이닝 동안 2실점을 기록하며 분투했다. 6회 1이닝 동안 한국 대표 불펜 투수들을 상대로 5점을 낸 미국 타선을 그 전 5이닝 동알 비교적 잘 막아냈다.
주목되는 기록은 삼진. 미국 타자들은 이의리의 낮은 코스 체인지업을 전혀 공략하지 못했다. 포심 패스트볼도 낮은 코스로 잘 던졌기 때문에 미국 타자들은 무작정 낮은 공을 버릴 수 없었다. 이의리는 5이닝 동안 무려 9탈삼진을 기록했다.
이의리는 대회 개막 전부터 대표팀 에이스 계보를 이어줄 투수로 기대받았다. 특히 김광현과 비견됐다. 프로 데뷔 2년 차에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한 김광현은 일본전만 두 차례 등판해 승리 발판을 놓았다. 같은 유형(좌완), 비슷한 연차 탓에 이의리가 주목받았다. 이의리는 도쿄올림픽에서 비록 일본전에 등판하진 않았지만, 화력만큼은 뒤지지 않는 미국을 상대로 호투했다. 지면 금메달 획득에 실패하는 경기에서 자신의 투구를 보여준 멘털도 칭찬을 받을만했다.
한국 야구는 좌완 트로이카 류현진(토론토), 김광현(세인트루이스), 양현종(텍사스 산하 트리플A)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투수가 필요하다. 도쿄올림픽에서 이의리를 얻었다. 참담한 레이스에서 얻은 유일한 위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