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보다 더 극적인 올림픽 출전이 있을까요. 우여곡절 끝에 나가는 만큼 깜짝 놀랄 만한 성적 내겠습니다."
유도 남자 81㎏급 국가대표 이성호(29·한국마사회)는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는 도쿄올림픽 개막을 이틀 앞둔 21일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 올림픽 출전 선수 1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대회 출전을 포기하면서다. 국제유도연맹(IJF)은 차순위인 이성호에게 올림픽 출전권을 줬다. 생애 첫 올림픽이다. 올림픽 81㎏급 경기는 27일 일본 도쿄 무도관에서 열린다.
이성호를 21일 서울 방이동 대한유도회에서 만났다. 그는 "올림픽 유도 종목이 시작하는 24일부터 31일까지, 일주일간 제주도로 휴가 떠날 예정이었다. 올림픽에 나갈 수 있다는 소식에 급하게 제주 항공편을 취소했다. 도쿄행 비행기를 예약한 것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며 싱글벙글했다.
이성호는 대기만성형 선수다. 보통 국가대표 선수들보다 한참 늦은 27세(2019년)에 국가대표 1진이 됐다. 이성호와 나이가 같은 국가대표 선수 김원진(60㎏급) 곽동한(90㎏급), 조구함(100㎏급)은 2013년부터 1진으로 활약했다. 4~5년 준비한 선수들에 비하면 랭킹 포인트 쌓을 기회가 적었다. 2019년부터 지난달까지 15개 국제 대회에 출전했지만, 간발의 차이로 도쿄행을 놓쳤다. 세계 랭킹 25위까지 올림픽 출전권을 얻었는데, 이성호는 26위였다.
그는 크게 낙담했다. 이성호는 "주변에선 올림픽 본선행 티켓 '대기 1번'이라며 위로했지만, '올림픽을 포기할 사람이 있겠냐'는 생각에 희망은 일찌감치 접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린 올림픽 꿈이 사라졌다. 대표팀 동갑내기 중 나만 올림픽에 못 나가니 허망해서 견디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33세가 되는 2024년 올림픽에선 도저히 태극마크를 달 자신이 없더라. 목표가 없어서 올해 말 은퇴하기로 결심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달 초 충분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퇴촌해 성남 소속팀 훈련장에 복귀했다. 지친 그에게 이경근 마사회 감독이 가벼운 훈련 권했다. 선수는 유도로 속상한 마음을 털어내야 한다고 했다. 이경근 감독은 1988 서울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65㎏급)다. 이성호는 이 감독의 말을 따랐는데, 이것이 신의 한 수가 됐다. 꾸준한 운동과 식단 조절을 유지한 덕분에 그는 평소 체중인 88㎏를 유지했다. 평소 국제대회에 나갈 때처럼 이틀에 걸쳐 7㎏ 감량하면 된다. 이성호는 "그동안 지겹게 한 유도가 이상하게 며칠 더 하고 싶었다. 먹고 싶은 것 안 먹고 관리한 보람이 있다. 아마도 올림픽행 막차를 탈 운명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성호의 목표는 금메달이다. 다른 체급과 달리, 남자 81㎏급은 절대 강자가 없다. 대회마다 우승자가 다르고, 세계 1위도 자주 바뀐다. 이성호에게도 기회가 충분하다는 평가다.
2012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를 일궜던 정훈 전 남자 유도대표팀 감독은 "이성호는 경기 출전이 적어 랭킹이 낮을 뿐, 세계 상위 랭커와 붙어도 호각세"라고 했다. 남자 81㎏급은 김재범이 2012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냈던 체급이다. 이성호는 김재범과 같은 '체력 유도'가 주무기다. 치열한 깃 잡기 싸움으로 상대 힘을 뺀 뒤 경기 후반부에 승부를 거는 식의 운영이다. 이성호는 "레전드 (김재범 마사회 코치)에게 금메달로 가는 원포인트 레슨을 받겠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