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게만 느껴지는 재벌 총수들이 대중에게 다가가고 있다. 소셜미디어(SNS)를 통해서다. 총수들은 대개 50·60대의 ‘아재’지만 SNS상에서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공식 석상을 통해 접했던 근엄하고 진지한 모습과 다른 ‘회장님들의 외도’를 엿볼 수 있어서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서로의 인스타그램을 '맞팔'하는 사이다. 최태원 회장이 7월부터 SNS를 시작하면서 ‘재계 핵인싸’ 정용진 부회장과 흥미로운 구도를 형성하게 됐다. 최 회장은 4대 그룹 총수 중 처음으로 SNS를 하며 젊은 세대들과의 소통을 시작했다.
‘배우 유태오 관계’ ‘갤러그 게임 취미’ ‘레고 만드는 회장님’ ‘최 씨 삼남매’ ‘야식 기다리는 남편’ 등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밝혀진 최 회장의 새로운 모습들이다. 그는 게시물 1개당 짤막한 해시태그 1개 정도를 달고 있다. 지난 5일 공개된 배우 유태오와의 투샷에는 “좀비 배우 영화 매니아들”이라고 소개해 의외의 인맥으로 관심을 모았다. 최 회장의 동거인 김모씨와 유태오의 아내 니키리(사진작가)로 인해 맺어진 인연으로 알려졌다.
SK 측은 최 회장의 소셜미디어 활동과 관련해 “회장님이 평소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를 포함한 구성원들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해야 일반 대중과의 소통도 더 잘할 수 있다는 뜻을 강조해왔다"며 "이런 점에서 MZ세대의 주류 소통 플랫폼인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젊은 세대들과의 소통 창구는 인스타그램뿐만이 아니다. 음성 기반의 SNS인 '클럽하우스' 계정을 개설했고, 유튜브와 오디오 라이브 플랫폼에 참여하는 등 색다른 소통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지난 12일 공개된 대한상공회의소의 ‘국민 소통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유튜브 동영상에서는 개그맨 ‘하카소’가 그린 자신의 캐리커처를 보고 당황한 듯 허탈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이런 소통 행보로 인해 최 회장의 인스타그램은 게시물이 9개뿐이지만 팔로워가 이미 1만3000명을 넘어섰다. '좋아요'도 게시물당 1000개 이상 달리고 있다. 최 회장은 일반인의 질문에도 즉각적으로 간단히 답변하는 등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정용진 부회장과는 콘텐트의 성격이 다르다. 총수들의 일상을 공유한다는 점은 같지만 최 회장의 경우 정제된 느낌이 강하다. 게시물도 대부분 누군가 촬영한 사진을 주로 올리고 있다. 이에 ‘날 것’의 일상성이라는 느낌은 덜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정 부회장처럼 논란을 일으키는 일은 드물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의 경우 대한상의 회장직도 맡고 있기 때문에 게시물을 하나 올려도 필터링을 한 번 거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는 달리 정 부회장은 꾸밈없는 게시물로 일상을 빈번하게 공개하고 있다. 회사의 이미지가 곧 정 부회장의 이미지 자체가 돼버려 홍보·마케팅 콘텐트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여과 없이 본인이 직접 게재하다 보니 정치적 논란과 불매운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정 부회장은 지난 8일 공개된 브랜딩 스토리 북 '노브랜드’에 SNS를 하게 된 이유를 상세히 소개했다. 그는 “사실 회사를 운영하지 않았다면 SNS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SNS를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회사와 개인의 이미지가 중요한 시대라 이왕 하는 거 잘 활용해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팔로워 68만명에 가까운 ‘인싸’답게 콘텐트 노하우도 확고하다. 정 부회장은 “무작정 비즈니스 목적으로 브랜드, 상품 이미지만 업로드하면 식상하고 진정성도 없다”며 “진정한 소통을 위해 정직하게 제 경험을 공유한다. 인스타그램에서 한마디 하는 카피도 직접 쓰고, 카피가 재밌다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듣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