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기(49) 안양 KGC 감독이 2020~21시즌 프로농구에서 ‘신흥 명장’으로 입지를 다졌다.
KGC는 2020~21시즌 플레이오프에서 6강부터 챔피언결정전까지 10연승이라는 초유의 기록을 쓰며 우승했다.
김승기 감독은 플레이오프 승률을 70.6%(24승 10패)까지 끌어올리며 이 부문 역대 1위로 올라섰다.
재미있는 것은 올 시즌 김승기 감독이 4강 플레이오프에서 울산 현대모비스의 유재학 감독(정규리그 우승 6회, 챔피언결정전 우승 6회)을, 챔피언결정전에서 전주 KCC의 전창진 감독(정규리그 우승 5회, 챔피언결정전 우승 3회)을 모두 무패로 제압했다는 점이다. 프로농구 최고의 명장으로 꼽히는 두 감독을 차례로 꺾는 ‘도장 깨기’ 같은 스토리를 쓰며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김승기 감독은 지난 9일 챔피언결정 4차전에서 KCC를 이기고 우승을 확정한 직후 인터뷰에서 이러한 내용의 질문을 받았다. “유재학, 전창진 감독을 차례로 꺾고 우승했으니 이제 최고의 감독이라고 해도 좋은 것 아니냐”는 내용이었다.
김승기 감독은 이 질문에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운이 좋았다”고 잘랐다.
이번 정규리그 중반까지만 해도 김승기 감독은 고전을 면치 못했던 순간이 종종 있었다. 외국인 선수와 국내 선수들 간의 호흡이 맞지 않아 삐걱댔다. KGC는 정규리그를 3위로 마쳤는데, 2~3라운드까지 5~6위로 순위가 떨어져 애를 태우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 3월 KGC가 제러드 설린저를 영입하면서 대반전이 일어났다. 김승기 감독은 크리스 맥컬러를 내보내고 최근 2년간 부상 공백으로 몸 상태가 ‘물음표’였던 설린저를 과감하게 선택했다.
헹가래 받는 김승기 감독. 안양=정시종 기자
이번 KGC의 플레이오프 10연승에는 설린저의 공이 매우 컸다. 그는 2년의 공백을 무색케 하는 몸 컨디션과 더불어 동료를 모두 살려주는 차원 높은 플레이로 보는 재미까지 줬다.
하지만 설린저 한 명으로만 KGC의 전승 우승을 설명할 수는 없다. 김승기 감독은 이재도, 전성현 등 미완의 대기였던 가드 자원들을 리그 최고 수준으로 키워냈고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이를 검증받았다. 챔피언결정전에서 KGC의 이재도-전성현은 가드진 좋기로 유명한 KCC의 앞선을 상대로 완승을 했다.
빠르고 파워풀한 이재도는 스틸에 능해 무서운 속공으로 플레이오프에서 팀 분위기에 단번에 불을 붙이곤 했다.
슛은 좋지만, 수비가 약하다는 지적을 받았던 전성현은 기복이 적은 플레이, 폭발적인 득점으로 고비마다 KGC를 이끌었다.
전성현은 “상대 팀에서 가장 수비를 잘하는 선수를 내 매치업 상대로 붙이더라.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그걸 보며 ‘내가 정말 성장했구나’라는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김승기 감독은 종종 선수들을 직접 거론하며 비판하거나 경기 중 화를 내는 모습을 보여 ‘권위적인 지도자’라는 인상을 주기도 하는데 실제 모습은 다르다.
이재도는 군 복무 시절이던 2018~19시즌 도중 휴가를 나와 술에 취한 채 김승기 감독에게 “형, 저 정말 우승하고 싶어요”라고 찾아갔던 일화를 공개한 적이 있다.
전성현은 김승기 감독에게 자주 ‘대드는’ 선수다. 그는 “작전이 이해가 잘 안 될 때는 감독님한테 자주 대든다. 플레이오프에서도 드리블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듣고 또 대들었다. 상대 팀이랑 싸워야 되는데 감독님이랑 싸웠다”고 웃으며 회상했다. 한 번 상승세를 타면 유난히 폭발력이 강한 KGC의 에너지가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나왔다.
김승기 감독은 “2016~17시즌 우승 직후 FA 이정현이 다른 팀으로 갔을 때 그 공백을 메워가느라 힘들었다. 그러나 이후 선수들이 많이 성장했고 세대교체도 잘 해나가고 있다”며 “만일 올해 FA 이재도가 다른 팀으로 떠난다 해도 어린 선수들을 더 키워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김승기 감독은 올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유재학, 전창진 감독에 완승을 한 것에 대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젊은 감독들이 유재학, 전창진 감독 같은 명장 선배들에게 도전해서 이겼으면 좋겠다. 그렇게 농구가 더 재미있어졌으면 한다. 아마 유재학, 전창진 감독님들도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고 격려해 주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