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서울 강남의 한 실내암벽장. 마스크를 쓴 서채현(18)과 천종원(25)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인공암벽을 올랐다.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처음 채택된 스포츠클라이밍 출전을 한창 준비 중이다.
두 사람은 9일 극적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땄다.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이 올림픽 출전권(남녀 각 20장, 총 40장) 중 28장을 2019년 콤바인 세계선수권대회 등의 성적을 기준으로 나눠줬고, 나머지는 대륙 안배로 배분했다. 코로나19 탓에 아시아선수권대회가 열리지 않은 상황. 올림픽 출전권이 없는 아시아 선수 중 2019 세계선수권 성적이 가장 좋은 서채현(여자 13위)과 천종원(남자 20위)이 도쿄행 막차를 탔다.
서채현은 “얼떨떨했다”라고, 천종원은 “운이 좋았지만, 자력 진출 가능성도 있었다”고 각각 말했다. 천종원은 2018년 아시안게임 콤바인 우승자이자 2019년 볼더링 세계 4위다. ‘제2의 김자인’ 서채현은 성인 데뷔시즌인 지난해 월드컵 리드에서 4연속 우승했고, 2019년 리드 세계 1위다. 도쿄행이 무산된 ‘암벽 여제’ 김자인은 최근 서채현에게 ‘지금처럼 잘해달라’고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스포츠클라이밍 콤바인은 ▶리드(15m 인공암벽을 6분 안에 더 높이 오르기) ▶볼더링(로프 없이 4분 안에 5m 암벽의 3~4개 루트를 적은 시도로 많이 완등하기) ▶스피드(15m 암벽 빨리 오르기) 등 세 종목 순위를 통해 메달 색을 가린다. 예를 들어 리드 1위, 볼더링 3위, 스피드 2위라면 세 종목 순위를 곱해 6포인트(1X3X2)다. 포인트가 낮은 작은 선수가 우승한다.
천종원은 볼더링이 강하고 리드가 약하다. 서채현은 그 반대다. 천종원은 “볼더링은 단거리, 리드는 마라톤과 비슷하다. 난 리드가 약점인데, 채현이는 신기할 정도로 리드를 잘한다. 채현이가 전완근(아래팔 근육)과 점프력을 보완하면 볼더링도 잘할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듣고 있던 서채현은 “난 힘없이 등반하는데, 오빠는 파워와 탄력이 좋다. 리드는 지구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맞장구쳤다. 둘 다 현재는 스피드 종목의 시간 단축에 몰두한다. 서채현은 “난 스피드 꼴찌 탈출이 목표다. 9초 초반까지 당기고 싶다”고 말했다. 천종원은 “현재 6초1인데, 5초 후반까지 당기겠다”고 말했다.
서채현은 아이스 클라이밍 국가대표인 아버지 서종국(47) 씨를 따라 7살 때 종목에 입문했다. 천종원은 중학 3학년 때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날 학교(신정고) 오전 수업에 참석한 서채현은 전교 1, 2등을 다툰다. 천종원은 운동에 전념하기 위해 대학을 중퇴했다.
한때 몸무게 60㎏을 유지하려고 천종원은 즉석밥 하나로 하루를 버텼다. 이제는 3종목을 고루 잘하기 위해 근력을 키우고 있다. 홀드를 잡는 악력이 82㎏인 그는 “72.5㎏을 벨트에 매달고 턱걸이를 한다”고 공개했다. 그는 “홀드를 수없이 잡았더니 출입국 때 지문 인식이 안 될 정도”라며 웃었다. 하루 최대 8시간 훈련하는 서채현은 “아직 미성년자라서 자동 입출국심사는 안 해봤다.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현 스포츠클라이밍 대표팀 감독은 “올림픽 출전이 불확실할 때도 꿈을 놓지 않고 계속 훈련했다. 이제 목표는 메달”이라고 말했다. 세계 1위는 남자 나라사키 토모아(일본), 여자 간브렛 얀야(슬로베니아)이다. 천종원과 서채현 20위다. 서채현은 “간브렛은 ‘넘사벽’(뛰어넘을 수 없는 상대)이지만 그래도 목표는 메달”이라고, 천종원은 “3년 전 아시안게임에서 나라사키를 꺾고 금메달을 땄다. 1등 한다는 각오로 도전하겠다”고 다짐했다.
‘스파이더 남매’에게 “영화 속 스파이더맨처럼 거미줄을 쏠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나”라고 묻자 “세상을 구하기보다 올림픽 메달을 따고 싶다”는 대답이 동시에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