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IS포토 파울루 벤투(52)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지금 '불통의 시대'에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오는 25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리는 일본 대표팀과 친선전을 준비하는 과정을 놓고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그 배경에는 벤투 감독 '소통의 부재'가 큰 역할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꺾이지 않은 시점에서 일일 확진자 1106명(23일 기준)이 나오는 일본으로 원정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축구팬들이 당장 반발했다.
선수 차출 과정도 매끄럽지 않다. 햄스트링 부상을 당한 손흥민(토트넘),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주세종(감바 오사카), 부상자 홍철(울산 현대)을 선발하는 과정 등에서 일방통행을 강행했다.
선수 발탁 권한은 벤투 감독에게 있다. 하지만 소통과 배려 없이 남발하는 권한은 오래가지 못한다. 신뢰를 받지도 못한다.
당초 한·일전 명단에 벤투 감독은 올림픽대표팀 소속 5명을 선발했다. 원두재, 이동준(이상 울산), 조영욱, 윤종규(이상 FC 서울) 그리고 엄원상(광주 FC·부상으로 소집 해제)이었다. 올림픽대표팀 발탁 가능성이 있는 유럽파 이강인(발렌시아)과 정우영(프라이부르크)도 선발했다. 유럽파는 A매치가 아닌 이상 차출 의무가 없다. 물론 복잡하지만 구단과 조율하면 올림픽대표팀 합류도 가능한 일이다.
유럽파는 그렇다 치더라도 올림픽대표팀 핵심 멤버 5인을 A대표팀으로 데려가는 건 '불통의 극치'라 할 수 있다. A대표팀 주축 유럽파 선수들이 합류하지 못해 올림픽대표팀으로 땜질하려 했다면 이 역시 온당치 못한 처사다.
다른 시기라면 반길 일이다. 올림픽대표팀에서 '월반'해 A대표팀으로 가는건 한국 축구의 전체적인 경쟁력을 위해서 좋은 현상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A대표팀의 핵심 멤버로 성장한 선수도 있다. A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 동반 상승 효과도 낼 수 있다.
김학범 U-23 대표팀 감독이 지난 22일 경주시민운동장에서 진행된 3월 소집 훈련 중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지금 시기는 그럴 때가 아니다. 2020 도쿄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았다. 7월 23일 개막이다. 4달 남았다.
코로나19로 올림픽대표팀은 제대로 된 소집과 평가전을 치르지 못했다. 3월 소집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이유다. 올림픽대표팀은 지난 22일 경주에서 소집했다. 외국 강호 혹은 다른 국가 올림픽대표팀과 평가전은 없지만 손발을 맞추고, 최종엔트리 윤곽을 잡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런데 벤투 감독의 결정으로 이 귀중한 시간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게 됐다. 주축 선수들은 A대표팀으로 갔다.
이 과정의 마지막은 참담하다. 윤빛가람(울산)이 부상으로 낙마하자 대체 선수로 이동경(울산)을 뽑았다. 이동경은 올림픽대표팀 핵심 멤버다. 올림픽대표팀 합류를 준비하다 급히 인천공항으로 향해야 했다. 오직 A대표팀만 바라보는 벤투 감독의 아집을 느낄 수 있는 결정적 장면이다. 김학범 올림픽대표팀 감독은 "이동경은 사전에 미리 얘기된 부분은 없었다. 조금 아쉽다"고 말했다.
A대표팀 역시 코로나19로 제대로 된 소집과 평가전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큰 틀에서 봤을 때 올림픽대표팀과 상황은 다르다. 벤투 감독이 진행하고 있는 이 '무리한' 일본 원정의 1차 목표는 오는 6월 열리는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이다. 이를 앞둔 마지막 평가전이다. 올림픽대표팀의 1차 목표는 7월 열리는 도쿄올림픽 본선이다.
어느 대회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하고, 어떤 대표팀에 더 배려를 해줘야할 때인가. 벤투 감독을 제외한 모두가 알고 있다.
한 축구인은 "월드컵 2차 예선을 가지고 이렇게까지 무리하게 추진해야 하는가. 2차 예선을 대충 준비하라는 말이 아니다. 일본 원정을 가지 않아도, 올림픽대표팀에 배려를 해도 큰 무리 없이 치를 수 있는 대회라는 의미다. 아시아 강호가 총촐동하는 최종예선도 아니다. 상대는 투르크메니스탄, 북한, 레바논, 스리랑카다. 한국 축구가 언제부터 2차 예선을 두려워했고, 걱정했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2018 러시아월드컵 2차 예선만 하더라도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은 8전 전승으로 통과했다. 지금 벤투호의 순위는 H조 2위다. 투르크메니스탄이 1위다. 걱정할 정도가 아니다. 투르크메니스탄이 1경기 더 치렀을 뿐이고, 남은 4경기 모두 한국에서 치러진다. 모두 한국보다 한 수 아래인 상대들이다. 무리하지 않아도, 올림픽대표팀 선수들이 없어도 무난하게 진행할 수 있다. 한국 축구에 이런 자신감과 경쟁력이 없다면 최종예선에 진출한 들 무슨 의미가 있겠나"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축구인은 "무리한 일본 원정이라도 올림픽대표팀이 한다고 했으면 이렇게 큰 반발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세계대회에 나선다. 게다가 원정 대회. 아직 조편성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대부분이 한국보다 한 수 위 상대들이다. 무리를 해서라도 최정예 멤버로 올림픽대표팀의 경쟁력을 높여야 할 시기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지난 15일 축구회관에서 열린 3월 A매치 명단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파울루 벤투 감독. 대한축구협회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할 일을 계속해야 한다. 나는 방역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나의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한·일전은 월드컵 예선을 치르기 전 찾아온 유일한 기회다. 팀을 정상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나의 의무이자 도리, 책임이다."
벤투 감독이 한·일전 명단을 발표하면서 꺼낸 말이다. 그의 의무이자 도리, 책임은 또 있다.
벤투 감독은 연령별 대표팀의 최고 수장이다. 그의 역할은 A대표팀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 축구 전체를 아우르는 것 또한 중요한 '책임'이다. A대표팀에만 시선이 갇혀서는 곤란하다. 전체를 크게 볼 수 있는 시선과 통찰력을 갖춰야 하는 '의무'도 있다.
한국 축구에 있어서 올림픽도 중요한 대회다. A대표팀 감독으로서 도울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돕는 게 '도리'다. 올림픽이 끝난 뒤 최종예선에 가서 A대표팀에 몰아줘도 늦지 않다. 이런 부분을 배려하고 조율하기 위해 소통이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