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기뻐하기엔 찝찝함이 더 큰 노미네이트다. 퇴보를 부르는 그들만의 자존심이 아닐 수 없다.
영화 '미나리(정이삭 감독)'가 제78회 골든글로브시상식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가운데, 국내는 물론 외신들도 엄연한 '미국 영화'를 외국어영화상 부문에서 평가받게 만든 점, 각종 협회에서 트로피를 쓸어 모으고 있는 배우들의 노미네이트가 불발된 점에 대해 비판 섞인 의견을 쏟아내고 있다.
골든글로브를 주관하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HFPA)는 3일(현지시각) 78회 골든글로브상 후보를 발표했다. 그중 '미나리'는 외국어영화상 부분 후보로 지명돼 '어나더 라운드'(덴마크), '라 로로나'(프랑스·과테말라), '자기 앞의 생'(이탈리아), '투 오브 어스'(미국·프랑스) 등 작품과 경쟁을 펼친다. 국적은 'USA'. 미국으로 표기돼 있다.
'미나리'의 외국어영화상 부문 노미네이트는 공식 후보 발표 이전부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미국 제작사에서 제작된, 한국계 미국인 감독이 연출한 미국 영화임에도 '대화의 50% 이상이 한국어'라는 이유로 작품상 후보군에서 제외, 외국어영화상으로 분류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 나왔기 때문이다.
이는 소문이 아닌 현실이 됐다. '오스카 레이스'로 설명되는 미국 시상식 시즌에 60개에 육박하는 트로피를 싹쓸이 했음에도 골든글로브는 외국어영화상 부문 하나로 '퉁'쳤고, 아카데미시상식 여우조연상 후보 1순위로 꼽히며 무려 20관왕에 오른 윤여정을 비롯한 배우들 역시 후보에서부터 배제됐다.
이에 각종 외신들도 골든글로브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회사가 제작한 영화가 외국어영화 후보로 경쟁하는 현실이 바보같다"고 꼬집었고, 버라이어티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는 '미나리'가 미국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어영화상 부문에서 경쟁하도록 하는 기이한 결정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데드라인은 "골든글로브는 영어에 대해서 만큼은 종종 아카데미와 다른 결정을 내린다"며 "스티븐 연과 윤여정은 많은 칭찬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골든글로브 후보 발표에서는 주목받지 못했다"고 거들었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도 "당신의 영화가 50% 이상 영어로 대화하지 않는다면 골든글로브 최우수작품상 후보에 오를 수 없다. '미나리'는 덴버 태생의 정이삭 감독이 연출한 미국 작품임에도 문턱에 미치지 못했다"며 "깜짝 후보 조디 포스터 지명을 위해 윤여정이 빠진 것도 놀랍다"고 비꼬았다.
지난해 '미나리'와 같은 이유로 골든글로브의 외면을 받았던 '페어웰' 룰루 왕 감독은 "나는 올해 '미나리'처럼 미국 영화 같은 미국 영화를 본 적이 없다, 이 영화는 아메리칸 드림을 기대하는 미국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며 "우리는 미국적인 것을 오로지 '영어의 사용'으로만 정의하는 구식 규정들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단언했다.
'미나리'는 36회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및 관객상 수상을 기점으로 미국 영화협회 및 시상식을 싹쓸이하며 59관왕 110개 노미네이트라는 대기록을 세우고 있다. '영어'에 미친 골든글로브는 '미나리' 노미네이트에 아쉬움을 남겼지만, 최종 보스 아카데미시상식을 다를 것으로 점쳐진다. 아카데미시상식 규정에 따라 '미나리'는 미국 영화로 분류, 오히려 국제극영화상을 제외한 모든 부문에서 경쟁이 가능하다.
78회 골든글로브시상식은 오는 28일 개최되며, 93회 아카데미시상식 후보 발표는 3월 15일, 시상식은 4월 25일에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