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 한 은행의 대출창구 모습 ‘빚투(빚내서 투자)’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등의 영향으로 5대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이 하루 1조원 넘게 불어나는 등 ‘패닉 대출’ 사태가 불거졌다. 그러다가 최근 시중은행들이 신용대출 관리에 나서면서 하루 새 2400억원 넘게 줄어들며 주춤하는 모습이다.
금융권에서는 한도를 축소하기 전에 미리 신용대출을 받으려는 이른바 ‘막차’ 수요가 한풀 꺾였다는 분위기다. 하지만 신규 마이너스통장 대출 수요까지 고려하면 안정세로 전환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당국이 주요 은행에 ‘신용대출 관리 계획서’를 오는 25일까지 제출하라고 하면서 대출길이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급증한 신용대출…'우대금리' 낮춰 조절 시작
22일 은행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은행에서 신규 취급된 개인신용대출 금액은 27조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19조원)보다 38.5% 늘어났다. 1년 전 증가율은 9.9%에 불과했다. 또 9월 들어 5대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2조원 넘게 증가했다.
신용대출은 특히 20대와 30대에서 많이 늘었다. 이 기간 20대(3조원)와 30대(10조원)의 신규 신용대출 금액은 1년 전보다 각각 39.3%, 46.3% 늘어 전체 증가율을 넘어섰다. 그 결과 20·30세대를 합친 대출 증가율은 지난해(9.1%)의 5배 수준인 44.7%에 달했다.
여기에는 부동산·주식 투자 자금을 위한 것뿐만 아니라 코로나19로 어려워진 살림살이에 생활자금을 신용대출로 메우는 가계도 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나중에 필요할 때 못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신용대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며 “또 인터넷은행에서는 비대면으로 5분 만에 신용대출 받는 게 가능해졌고, 정부도 금융권 비대면 영업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것도 한몫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금융당국 측은 이렇게 받은 신용대출 자금이 부동산 투자용으로 사용될 가능성도 크다고 판단하고 급증하는 신용대출을 규제하기 위한 움직임에 나섰다. 일단 금융당국은 10일과 14일 주요 은행 여신 담당자와 회의를 열고 과도한 신용대출 증가세를 억제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으며, 신용대출 수요 조절 방안을 오는 25일까지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은행들은 관행적으로 연봉의 두 배까지 한도로 설정했던 신용대출에 제동을 걸 것으로 보인다. 낮은 금리로 수억 원씩 자금을 빌리는 고신용·고소득 전문직의 신용대출부터 줄이라는 당국의 메시지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은행권의 신용대출은 보통 연 소득의 100∼150% 범위에서 이뤄지고, 특수직 등은 현재 은행에서 많게는 연 소득의 200%까지 빌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게 은행 측의 설명이다.
실제로 시중은행들은 서울시와 경찰청 등 일부 기관 소속 직원들에게 최대 2억원 이상 한도로 1%대 중반대 금리의 신용대출을 제공하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신용대출 관리 방안으로서 먼저 우대금리 하향 조정을 검토 중이다”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다만 저소득·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대출까지 막을 경우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한 생활자금 수요까지 차단할 수 있어 전면 규제책은 내놓지 않기로 했다.
제도권으로 들어가는 P2P 업체… 대출 서비스 변화도
금융당국의 구두 개입으로 시중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못한 주택자금이나 주식 투자자금을 P2P(온라인투자연계금융)에서 충당하려는 움직임도 있지만, 역시 앞으로는 여의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온투법) 시행으로 P2P 금융업체들은 법령상 요건을 갖춰 금융당국의 심사를 거쳐 등록해야 하며, 그렇지 못한 업체들은 영업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P2P 업체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차주(돈을 빌리는 사람)와 투자자(돈을 빌려주는 사람)를 연결해주고 수수료를 받는다.
한국P2P금융협회 공시를 보면, 협회 회원사 중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취급하는 27개사의 개인 주담대 잔액은 지난달 말 현재 4583억원으로 집계됐다. 잔액 규모는 은행권과 비교해 미미한 수준이지만, 증가 폭이 상당하다. 최근 3개월의 전월 대비 증가율을 보면 6월 6.9%, 7월 6.5%, 8월 7.4%다. 8월은 올해 들어 최대 증가율이다.
P2P 금융의주담대는 보통 매달 이자만 갚다가 한 번에 원금을 상환하는 만기 일시상환으로 부담이 적다. 만기는 1년이지만 연장도 가능하다. 은행 신용대출과 돈 갚는 방식이 유사한 방식이다.
P2P 금융 통계회사 미드레이트에 따르면 9월 초 기준으로 P2P 업체 135개사의 대출 잔액은 2조2953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최근 온투법으로 당국이 P2P 업체 중 옥석 가리기에 나섰고, 대출의 부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례로 창고에 온라인쇼핑 판매업자의 재고를 보관하고, 그 가치를 평가해 운전자금을 대출해주는 ‘동산담보 대출’을 주로 취급해 온 ‘팝펀딩’은 지난 6월 폐업 절차를 밟게 됐다. 금감원이 ‘팝펀딩’의 대출 취급 실태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불법 혐의가 드러나 검찰의 수사를 받게 되면서 대규모 손실이 났기 때문이다.
이처럼 P2P 업체의 부실이 계속되며 6월에만 4곳이 문을 닫았고, 7월 3곳, 8월 7곳 등 폐업이 잇따르고 있다.
이외에도 온투법의 규제로 대출이 막히는 경우도 발생했다. 최근 ‘1금융권 제휴 은행 대출’로 인기를 끌었던 ‘피플펀드’는 은행 연계형 신용대출 서비스를 종료했다. 온투법으로 인해 대출 계약 등 핵심 업무를 제3자에게 위탁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피플펀드는 다른 P2P 업체들과 달리 전북은행을 낀 신용대출을 제공한다는 점을 내세워 대부업 대출 등에 거부감을 갖는 이용자들을 공략해 왔지만, 해당 서비스 모델을 종료하게 됐다.
피플펀드의 대출 잔액은 지난달 기준 2852억9000만원으로 업계 1위 수준이었고, 누적 대출액은 9857억1700만원이었다.
이에 피플펀드는 온투법 취지와 내용에 따라 10월 중 온투업 라이센스 기반의 신용대출 ‘피플펀드론 2.0’을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P2P 업계 관계자는 “당국이 전수조사했던 전체 237개 가운데 제도권에 진입할 업체들로 대출 루트가 좁아지겠지만, 부실은 확실히 줄어들 것”이라며 “온투법에 맞춰 P2P 업체는 새롭게 대출 등 서비스를 업데이트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