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드라마 시장은 방송국을 중심으로 한 작품이 편성되면 작가와 감독이 결정되고 배우들의 캐스팅이 진행된 뒤 촬영에 들어가는 수순을 밟았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드라마 제작 시스템 환경이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편성은 뒤로하고 제작사가 작품을 정하면 배우 캐스팅을 한 뒤 방송국에 찾아가 '이런 캐스팅으로 세팅했으니 편성을 해달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편성이 정리되지 않았기에 제작사 입장에서는 세팅을 최대한 하지만 판을 짜놓고도 방송국에 거절당하기 일쑤다. 방송국의 입장은 또 반대다. 자사와 얘기를 하다가도 조금 더 높은 금액을 지불하는 방송국이 있다면 제작사는 언제든 채널을 옮길 수 있기에 불안하다는 입장이다. 서로 간의 입장은 분명하다.
방송국에서 편성을 쉽게 못 하는 건 불확실성이다. 코로나 19와 시청률의 하락에 의한 광고가 많이 줄어들면서 수익 사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대박' 드라마가 나와야 하는데 캐스팅이 변변치 않기 때문이다. 또한 편성을 미리 해도 변수에 따라 바뀌는 경우가 많으니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의 편성이 아닌 한 치 앞만 바라보고 있다.
지상파 3사 월화극 블록이 온전히 살아있는 월화극은 구멍이 많다. KBS 2TV는 '좀비탐정' 이후 두 달여 공백이 있다. MBC도 10월 방송되는 '카이로스' 이후 미정이다. SBS도 9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펜트하우스'를 연속 편성하고 그 뒤는 미정. KBS 2TV 수목극은 내년 2월 '안녕? 나야!' 종영 후 기약이 없고 MBC도 '나를 사랑한 스파이'가 끝나는 12월 이후 잡힌 드라마가 없다.
문화평론가 이호규 교수는 "과거에는 '어떤 드라마야 누가 캐스팅됐어'가 관계자들의 주된 궁금증이었다면 요즘은 '누구 하는 드라마 편성됐어'로 돼 버렸다"며 "제작사 입장에서는 편성을 보장받지 못 하고 사전 제작을 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성준·임지연 주연의 '모히또', 최태준·수영 주연의 '그래서 나는 안티팬과 결혼했다', 박해수·이희준·수현 주연의 '키마이라'가 이미 촬영까지 끝낸 지 시간이 꽤 흘렀지만 편성을 못 받아 강에 둥둥 떠다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