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뷰티 유통 공룡 세포라코리아(이하 세포라)가 국내 상륙한 지 300일이 지났다. 세포라가 지난해 10월 2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파르나스몰점을 개점하자 K뷰티업계는 세포라가 일으킬 태풍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한국 뷰티 문화를 이끌어가겠다"는 야심 찬 포부처럼 한국 화장품 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륙 300일을 넘긴 세포라는 다소 민망한 처지에 몰렸다. 한국 뷰티 문화를 선도하기는커녕 목표로 내세운 6호 매장 오픈과 앱을 통한 거래 활성화도 흐릿해서다.
존재감 없는 세포라
"세포라요…? 한국 와서 뭐 보여준 게 있었나요?"
국내 화장품 기업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18일 상륙 300일을 맞은 세포라의 활약상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는 "쉽진 않겠지만, 세포라라는 이름값을 생각할 때 그래도 어느 정도는 국내에서 영향력을 보여줄 것으로 생각했다"며 "코로나19 탓도 있겠지만, 예상보다 반향이나 존재감이 적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실제 김동주 세포라코리아 대표는 초기에 내걸었던 공략을 제대로 완수하지 못하고 있다.
김 대표는 지난해 10월 "2020년까지 온라인 매장을 포함해 7개 매장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 세포라 측은 1~6호점은 계약을 위한 사전 작업을 마쳤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세포라는 지난 2월 문을 연 잠실 롯데월드몰 4호점이 마지막을 마지막으로 7개월 여 동안 출점하지 못하고 있다.
세포라 측은 19일 일간스포츠와의 통화에서 "오는 9월 4일 여의도 IFC몰 5호점을 오픈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6호점 개장에 대해서는 "계획은 있지만 코로나19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세포라가 야심 차게 준비했던 앱 론칭도 감감무소식이다. 김 대표는 올해 초까지 모바일쇼핑 부문을 선보인다고 했다. 앱과 온라인 소비로 연간 20% 이상의 매출을 책임지겠다는 청사진도 내놨다. 하지만 앱 출시 역시 10월 론칭을 예상할 뿐 오픈 날짜를 못 박지 못하고 있다.
오프라인 매장과 앱의 신규 론칭이 늘어지는 사이 세포라가 강점으로 내세웠던 체험형 서비스에도 제동이 걸렸다. 세포라는 15분 동안 전문가의 메이크업을 받을 수 있는 '메이크 오버 서비스'를 시작한 지 5개월여 만에 중단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대면 서비스 중단이 불가피 했다.
결국 세포라가 앞세웠던 것들을 상당 부분 놓쳤다. 매장 출점 속도가 느렸고, 모바일 쇼핑은 답보 상태다. 특장점으로 꼽았던 대면 서비스까지 중단했다. 업계와 소비자 사이에 "시코르, 올리브영 보다 나은 점이 무엇인가. 존재감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코로나19 탓만 하기엔…차별화 실패 지적도
세포라 관계자는 "코로나19로 5호점 출점이 다소 미뤄진 측면이 있고, 또 사람이 모이는 행사 등을 다소 지양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세포라가 코로나19 탓만 하기에는 차별화에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포라의 글로벌 본사는 항상 '독점 브랜드'를 자랑거리로 내세웠다. 실제 세포라 글로벌 본사는 알려지지 않은 경쟁력 있는 브랜드를 직접 발굴하고 이를 중견 브랜드로 키워내는 데 일가견이 있다.
국내 화장품 업체 관계자는 "우리 브랜드가 과거 세포라 미국 매장을 입점해 한동안 좋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세포라가 비슷한 상품을 PB(자사상표) 제품으로 내놨다. 잘 나가는 상품을 미리 골라내고 테스트한 뒤, 복사하는 기술까지 대단하다"고 혀를 내둘렀다.
세포라는 지난 10월 한국에 뿌리를 내리면서 '세포라에서만 써보고 살 수 있는 화장품'을 3개월 주기로 소개하겠다고 했다. 국내 브랜드 '활명' '탬버린즈' '어뮤즈'를 시작으로 지난 6월에는 팝스타 리한나의 '펜티 뷰티' '리피' 등을 독점으로 선보였다. 그러나 이 브랜드들이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보기에는 다소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세포라의 독점 제품이 차별적인 매력이 없거나 세포라의 집객 효과가 시원치 않다는 뜻이다.
한 소비자는 "세포라 신촌점에 가본 적이 있는데 특색이 없다. 일반 백화점에도 있는 명품 브랜드도 있던데 미국에서 보던 세포라 매장과는 달랐다"고 꼬집었다.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그룹이 운영하는 세포라는 미국·프랑스·이탈리아·중국 등 33개국에서 2300여 개 매장을 거느리고 있다.
김 대표는 "한국 1호점이 전 세계 2300여 개 매장 중 100대 매장 안에 들어가길 기대한다"고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지금과 다른 차원의 노력과 변화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