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광약품 공장 모습. ‘오너가 대주주의 대량 매도=주가 급락.’ 국내 주식시장에서 통용되고 있는 공식이다. 최근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이슈로 주가가 급등한 틈을 타 차익 실현에 나선 제약사 대주주들이 나타나 주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개인 투자자들은 “주주들을 가지고 노는 건가”, “불나면 직원들 버리고 갈 회사”라는 등의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고 있다. 오너가의 지분 매각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주식 가치를 높이는 데 힘쓰기보다는 오히려 훼손한다는 측면에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부광약품은 1대 대주주인 정창수 부회장이 지난달 24일 시간외 매매(블록딜)를 통해 257만6470주 매도 폭탄을 던졌다. 처분 단가 3만9155원으로 총 1009억원에 달하는 대량 매도다. 12.46%로 개인 최대 지분을 보유했던 정 부회장은 이번 블록딜로 3.98%를 매각하면서 8.48%로 지분율이 떨어졌다. 정 부회장은 부광약품 창업주 일가와 동업자였던 고 김성률 명예회장의 동서다.
블록딜 이후 부광약품의 주가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23일 종가 4만1550원까지 올랐던 주가는 24일부터 꺾이면서 7거래일 연속 떨어졌다. 지난 3일 3만6300원까지 하락한 주가는 4일 코로나19 백신 개발 훈풍 등으로 3만7550원까지 올랐다. 하지만 다른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종목에 비하면 크게 오르지 못했다.
부광약품은 코로나19 치료제의 약물 재창출 분야에서 개발 속도가 가장 빠르다. 임상 2상을 환자 60명을 대상으로 전국 8개 병원에서 치료하고 있다.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가장 먼저 임상 2상을 신청했고, 환자 대상 임상이 시작돼 개인 투자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이에 부광약품 주가는 연초(1만4050원) 대비 300% 가까이 뛰었다. 하지만 주식 대량매도로 인해 ‘항암제 특허 등록’과 같은 호재에도 주가가 좀처럼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부광약품 관계자는 “부회장님은 주식 지분이 많지만, 경영에 관여하는 회사의 1대 대주주에 해당하지 않는다. 회사 경영진과는 관계없는 개인적인 매각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신일제약의 경우 회사 경영진 특별관계자로 묶인 오너가가 매도 폭탄을 던져 비난의 목소리가 더욱 거세다.
주가 변동도 심했다. 신일제약 오너가는 지난달 20~23일 집중적으로 대량 매도에 나섰다. 홍성소 신일제약 회장의 형인 홍성국 전 대표, 동생인 홍승통씨, 부인인 신건희씨가 모두 주식을 처분하며 시세 차익을 남겼다. 홍 회장의 세 딸인 청희·자윤·영림씨도 각각 8000주, 6000주, 1만1600주를 장내에 매도했다.
신일제약 경영진의 1대 대주주인 홍씨 일가는 총 23만2600주를 팔아치웠다. 매도 시기는 신일제약이 4연속 상한가를 기록한 때였다. 홍씨 일가는 이번 대량 매도로 120억원 이상의 수익을 남기는 등 쏠쏠한 재미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오너가의 매도 폭탄에 개인 투자자들은 울상이 됐다. 신일제약은 지난 7월 23일 5만8100원까지 찍었다. 대주주의 대량 매도가 끝난 후 24일 매매거래가 정지됐고, 이후 급락했다. 27일 하한가를 기록했고, 지난 3일 3만250원까지 떨어졌다. 4일 종가 3만1850원 기준으로 최고점 대비 45% 이상 떨어졌다.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이슈로 제약·바이오 종목에 대한 개인 투자자들의 관심은 지속되고 있다. 제약·바이오 업계는 실적이 아닌 기대감에 투자금이 대거 몰리면서 ‘거품’이라는 달갑지 않은 인식을 받아왔다. 여기에 일부 오너가의 ‘매도 폭탄’까지 터지면서 도덕성에 상처를 입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제약업계는 경영진의 대량 매도가 주가 변동에 엄청난 파장을 미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오너가들이 조심하는 분위기다. 오너가의 대량 매각 행위는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