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광양시라는 연고지. K리그 구단 중 비행기를 타야 하는 제주 유나이티드를 제외하고 가장 멀고 교통편이 불편한 지역. 구단의 상징색은 잘못 사용하면 정말 촌스러운 노란색. 팬들과의 시대에 뒤떨어진 소통 방식. 그리고 경기력적으로도 화끈한 공격축구가 아닌 수비축구라는 색안경. 이런 여러 가지가 합쳐 전남은 '촌티'를 대표하는 구단이 됐다. 이런 이미지로 오랫동안 살아왔다.
전부 '과거'의 일이다. '지금' 전남은 그렇지 않다. 경기장부터 팀의 철학과 방향성 그리고 세련된 경기력을 위한 준비까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바꿨다. 촌티를 벗고 '뷰티'를 입었다. 이런 전남의 획기적인 변화 노력을 소개한다.
◈광양축구전용구장
전남의 홈 구장인 광양축구전용구장은 1993년 한국에서 두 번째 축구전용구장으로 개장한 역사적 운동장이다. 하지만 오래된 전용구장이라는 걸 제외하고 특별한 멋을 찾지 못했다.
이번에 전남은 구단의 상징인 홈구장을 대대적으로 변화시켰다. 경기장 외부부터 내부까지 전부 바꿨다. 경기장 외관 상단부에는 이종호, 이유현 등 전남 간판 선수들의 모습이 담긴 대형 사진을 시원하게 걸었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장면이다. 내부로 들어오면 더욱 파격적 변화를 느낄 수 있다. 내부 벽면에는 촌스러울 수 있는 노란색이라는 편견을 과감히 깼다. 노란색과 검정색을 적절하게 조화시켜 세련된 이미지를 연출했다. 그라운드로 나가는 길목에는 전남 선수들의 사진을 열정적으로 배치했다. 유니폼과 시즌권 모두 세련미가 철철 넘쳐 전남 팬들의 극찬을 받았다.
관중석도 새단장을 했다. 본부석 주변에 프리미엄 좌석이 위치했다. 관중석 변화의 핵심 작품이다. 이 역시 노란색과 검정색이 환상적인 조화를 이뤘다. 또 다른 구장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냉각시스템도 갖췄다. 관중석 벽쪽에서 잔 물줄기가 나오는 시스템인데 무더위에서 약 2도~3도 정도 온도를 낮춰주는 역할을 한다. 이를 위해 공사비 약 2억5000만원을 들였다.
화룡점정은 라커룸이다. 검정색과 노란색의 세련된 조화는 기본. 핵심은 경기장의 라커룸과 전남 클럽하우스의 라커룸이 같은 공간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비슷하다는 점이다. 사실상 똑같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선수들이 훈련과 실전을 똑같이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든 장치다. 훈련이나 실전이나 라커룸에서 느끼는 감정이 비슷해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훈련이 곧 실전인 셈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관중이 없었던 지난 날. 전남은 새로운 변화를 준비했다. 오는 9일 전남은 광양전용구장에서 서울 이랜드 FC와 K리그2(2부리그) 14라운드를 치른다. 올 시즌 첫 관중을 초대하는 경기다. 이에 맞춰 모든 준비를 끝냈다. 전남 팬들에게 처음으로 세련된 경기장을 공개한다. 뷰티를 입은 경기장에 탄성을 지를 전남 팬들을 기다리고 있다.
◈철학과 방향성
경기장만 바뀐 게 아니다. 구단의 철학과 방향성도 획기적으로 바꿨다.
이를 주도한 건 지난해 취임한 조청명 전남 대표이사다. 그는 1986년 포스코에 입사해 혁신기획실장, 경영전략실장 등 포스코 및 계열사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한 정통 '기획맨'이다. 특히 적자로 허덕이던 포스코플랜텍을 흑자로 탈바꿈시켜 '회생전문가'라는 타이틀도 품었다.
그는 먼저 전남의 촌스러움에 대한 솔직한 입장을 밝혔다. 조 대표이사는 "직접 전남에 와보니 그런 느낌이 살짝 들었던 건 사실"이라고 웃으며 "젊은 세대들의 분위기에 맞춰서 변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젊은 층에 맞춘 변화는 거부했다. 전남 특유의 정서에 세련미를 적절히 조화시키는 새로운 이미지를 그렸다. 그는 "전남은 지방의 도시다. 국민들과 팬들에게는 고향에 대한 향수를 품은 팀이고 고향의 정취가 있는 클럽이다. 이런 걸 무조건 촌스럽다고 받아들일 수 없다. 레트로가 유행하는 것 처럼 복고에 대한 향수도 있다. 전남 특유의 정취를 유지하면서도 젊은 층들에게 세련된 이미지를 전해야 한다. 대도시를 따라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전남만의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애매했던 전남의 방향성도 확실히 정했다. 조 대표이사는 "전남에 오자마자 구단의 핵심 가치를 재정립했다. 자립, 열정, 신뢰 3가지다. 모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벗어나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 것이다. 또 프로축구단의 가장 중요한 것은 팬들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다. 즐거움을 주지 못하면 떠나야 한다. 이를 위해 구단 직원들은 열정적으로 임해야 한다. 그러면 구단과 팬 사이에 신뢰가 쌓일 것이고, 원팀이 되는 것이다. 팬들의 사랑이 커져야 구단의 힘도 커진다. 명문구단으로 갈 수 있는 과정이다. 그래서 우리의 슬로건은 '팬과 함께 행복한 명문구단'이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 제기된 포스코의 두 개 클럽 합병설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모기업 포스코가 운영하는 포항 스틸러스와 전남을 합쳐 하나의 강팀을 만들자는 논리다. 이에 조 대표이사는 "일부에서 한 팀으로 합쳐서 예산을 집중시키자는 말도 한다. 이건 현장을 모르고 피상적으로 느끼는 것이다. 축구단은 연고지가 생명이다. 포스코는 포항 제철소와 광양 제철소가 있다. 합치면 연고지는 어떻게 할 것인가. 포항과 광양에 두 개의 구단이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축구단은 지역사회와 제철소에 일하는 가족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포스코가 두 구단을 내실있게 운영하는 것이 축구단을 운영하는 근본 목적에 부합할 것이다. 두 구단이 한국 축구 발전에 기여해온 역사도 이어가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경기력
경기력적인 세련됨을 갖추기 위한 노력도 멈추지 않았다. 전남은 타 구단과 달리 1억1000만원을 들여 직접 카타펄트를 구입해 사용 중이다. 대부분의 구단은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제공하는 장비를 쓴다.
카타펄트는 체력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도구다. 부상을 예방할 수 있고, 훈련강도와 양을 조절할 수 있다. 훈련 중 라이브로 데이터 분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시간으로 개인 선수의 퍼포먼스를 확인할 수 있어 정확한 몸상태와 컨디션 체크가 가능하다. 또 전남은 전경준 감독의 요청으로 전력분석관 2명을 두고 있다. 이 역시 경기력 향상을 위한 전남의 노력 중 하나다.
전 감독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전남 선수들에게 이겨내는 힘이 약했다. 어려울 때 치고 올라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러니 이겨야할 경기에서 지는 경우가 있었다. 이것이 습관이 되면 절대 올라갈 수 없다. 이런게 촌스러운 모습"이라고 말한 뒤 "지금은 정말 많이 좋아졌다. 버티면서 상대를 밀어낼 수 있는 힘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전남이 전통적으로 수비축구를 한다는 이미지가 강하다는 평가. 전 감독은 쿨하게 인정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결과를 내려면 전남에서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 지금 스쿼드로 무리하게 공격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촌스러운 수비축구와는 다르다. 전 감독은 "더 효율적인 수비, 더 효율적인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세련된 축구는 효율적으로 많이 뛰는 축구다. 작년 선수들은 8km 정도를 간신히 뛰었다. 올해는 10km도 거뜬히 뛴다. 축구가 마라톤은 아니지만 효율적으로 많이 뛰면서 포지션마다 역할에 충실하며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걸 한다면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
분석관을 두 명 둔 이유도 설명했다. 그는 "혼자 영상을 분석하기에는 양이 많다. 리그를 퐁당퐁당 해야 한다. 3일 뒤 경기가 있고, 1주일 뒤 경기가 있는 날도 있다. 한 경기 끝나고 리뷰를 하고 있으면 다음 경기를 건드릴 시간이 없다. 그래서 오늘 경기는 분석관 한 명이 맡고, 다음 경기는 다른 한 명이 전담한다. 이들이 영상을 보고 나에게 피드백을 준다. 영상에 너무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시스템"이라고 답했다.
전남의 상징적 선수 이종호도 아름다운 축구를 그리고 있다. 공부하는 전술가 전 감독의 도움이 컸다. 그는 "선수 구성원도 바뀌었고, 축구가 더 스피디해졌다. 팀이 경기력적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느낀다. 전경준 감독님에게는 새로운 축구를 배우고 있다. 정말 축구 천재인 것 같다. 디테일하게 전술을 짜준다. 우리가 잘 하는 부분, 상대가 잘 하는 것을 막는 부분 등 정보를 주는데 깜짝 놀랄 정도다"고 미소를 드러냈다.
이어 이종호는 "올해 전남에서 이렇게도 축구를 할 수 있구나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렇게 찬스를 만들고, 이렇게 막아낼 수도 있구나 놀랄 때가 있다. 전남에서 새로운 축구를 하고 있다. 나 역시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그래서 요즘 축구가 더 재미있다. 파면 팔 수록 더 즐겁다"고 덧붙였다.
◈1부리그 승격
가장 확실한 변화는 2부리그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전남의 모든 구성원들은 한 마음으로 1부리그 승격을 자신하고 있다.
조 대표이사는 "명문구단으로 가기 위해서는 성적이 필요하다. 전남이 2부리그로 떨어졌다. 이런 과정이 명문구단이 되기 위한 보배같은 쓴 약이라고 생각한다. 떨어져봤기에 구단의 모든 구성원들이 마음을 다시 무장할 수 있었다. 새로운 미션과 핵심 가치를 앞세워 성실하게 과제들을 수행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빨리 1부리그로 올라가겠다. 프런트와 선수단의 협력이 잘 이뤄져 성과가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분위기가 매우 좋다. 당연히 목표는 1부리그 승격이다. 큰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했다.
전 감독은 "1부리그 승격을 하지 않을 거면 내가 여기 있을 이유가 없다. 스쿼드가 얇다는 건 변명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마지막까지 다할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한 단계 씩 올라가는 것이다. 우리 선수들이 기특하다. 잘 하고 있다. 대화도 많이 한다. 한 마음으로 노력하겠다"고 1부리그를 바라봤다.
이종호는 "전남은 2부리그에 있을 구단이 아니다. 전남이 강팀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2부리그에 있지만 전통이 있는 팀이다. 1부리그로 올라가야 한다. 전남 선수들의 목표는 뚜렷하다. 2부에서 누가 우승할지 아직 모른다. 끝나고 결과를 받아볼 것이다. 매 경기 결승처럼 임하고 있다. 선수들이 승격을 위해서 자기의 역량을 끌어내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결과가 잘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