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민(30)은 두산의 살림꾼이다. 타석에서는 중심 타선을 뒷받침하는 5, 6번에 나서 득점력 강화에 기여한다. 좌완 선발투수를 상대할 때는 리드오프로 나선다.
수비는 더 돋보인다. 리그에서 가장 수비력이 좋은 3루수다. 최근에는 어깨 통증으로 컨디션이 안 좋은 주전 유격수 김재호의 자리를 메웠다. 고교 시절 주 포지션이지만, 프로 데뷔 뒤엔 익숙하지 않은 자리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공격력 저하를 막기 위해 그를 유격수로 내세우는 라인업을 내세웠다. 부담감은 커졌지만 무난히 임무를 소화했다.
순탄한 행보는 아니다. 스프링캠프 출발 직전에 훈련 도중 코뼈 골절상을 당했다. 코로나19 여파로 개막이 연기된 덕분에 개막 엔트리에는 포함됐다. 그러나 지난 6월 3일 수원 KT전 훈련 중에 오른 새끼손가락 미세 골절상을 당하며 다시 이탈했다. 팀의 시즌 초반 순위 경쟁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몸은 경기장에서 떠나 있었지만, 마음과 몸 관리에 매진하며 철저하게 복귀를 준비했다. 허경민은 "부상을 핑계 삼고 싶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6월 23일 문학 SK전에서 복귀했고, 지난주까지 나선 22경기에서 타율 0.453을 기록하며 뜨거운 타격감을 보여줬다. 일간스포츠와 조아제약은 허경민을 7월 셋째 주 주간 MVP로 선정했다. 출전한 6경기에서 타율 0.524(21타수 11안타)·출루율 0.524·장타율 0.600을 기록했다. 이 기간 출루율 1위, 최다 안타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주간 대체선수대비승리기여(WAR)는 0.667이다. 리그 야수 가운데 가장 좋은 기록이다. 높은 팀 기여도와 집중력을 보여줬다.
- 올 시즌 두산 소속 선수의 첫 주간 MVP다. "주간 단위 시상식 수상은 내 기억에는 처음이다. 기분이 좋다. 이 상승세를 7월 내내 이어갔으면 좋겠다. 월간 MVP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손가락 부상 복귀 시점을 기준으로 한 달은 MVP에 부족하지 않다. "야구를 하면서 월간 기준으로 이토록 좋은 성적을 기록한 건 2015년 포스트시즌 이후 처음인 것 같다. 부상 뒤 하루도 야구를 머릿속에서 떠나보내지 않았다. 계속 생각했고, 복귀 뒤에도 빠른 적응 위해 노력했다. 다행히 결과가 좋았다."
- 스프링캠프부터 부상 악재가 많았다. 다행히 후유증이 적었다. "야구를 하면서 골절상을 처음 겪었다. 매우 중요한 시즌을 앞두고 있었고, 치르고 있었기 때문에 속상했다. 주변에서 '액땜했다고 생각하자'는 말을 많이 해줬다. 현실화되길 바랐다. 내가 어떻게 하기 나름이었다. 무엇보다 부상을 핑계로 삼지 않기 위해서 더 노력했다. 그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 주 포지션 3루가 아닌 유격수 출장이 많아졌다. "지난주에는 '이제 유격수 출장을 받아들여야겠구나'하고 생각했다. 10번 잘해도 1번 실수하면 크게 부각되는 자리 아닌가. 부담 아닌 부담이다. 항상 긴장 상태로 그라운드에 서고 있다. 최선을 다한다면 좋은 모습으로 봐주실 거라고 믿는다."
- 고교 시절은 오지환(LG), 김상수(삼성), 안치홍(롯데)와 4대 유격수로 불렸다. "동기생(1990년생)인 삼성 김상수나 이학주의 스텝이나 수비 능력은 내가 따라갈 수 없는 만큼 좋더라. 오랜 시간 유격수를 맡아온 친구들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장담은 드릴 수 없다. 그러나 (김)재호 형이 완벽한 몸 상태로 서기 전까지, 그 공백이 너무 크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만 노력하자는 각오다.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웃음)"
- 2020시즌 종료 뒤 FA 자격을 얻는다. 멀티 포지션 소화 이력이 도움될 수 있다는 시선도 있다. "안 그래도 많은 분이 저만 보면 그 얘기를 하신다. 몸값을 올리기 위해 유격수에 나서고 있는 건 아니다. 두산에서 뛰면서 과분한 사랑을 받았고, (주전 유격수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이런 상황에서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뿐이다."
- 풀타임 주전 6년 차다. 백업 선수 시절보다 나아진 점을 자평한다면. "야구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여유가 생겼다. 백업 시절, 풀타임 1~2년 차 때는 모든 플레이에서 100%를 쏟아내고 싶었다.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완벽한 모습을 원하다 보니 나 자신을 괴롭혔다. 지금은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는 진리를 잘 되뇌고 있다."
- 개선이 필요한 점을 꼽는다면. "두산 팬분들은 그래도 내 타격 능력이 2014~2015시즌보다는 지금이 낫다고 보실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타격 능력 향상은 영원한 과제 같다. 타격 기대치가 수비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낮다고 본다. 은퇴하는 날까지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싶다."
- 두산을 향한 기대치는 항상 높다. 1위가 멀찌감치 앞서가고 있다. "두산은 5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팀이다. 당연히 기대가 높을 수밖에 없다. 1등을 바라지만, 매년 있는 자원과 처한 여건 속에서 최대치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한 팀이다. NC는 약점이 없어 보인다. '잡아야 한다'며 압박을 느끼는 것보다는 '매 경기 최선을 다해서 1승씩 쌓아간다'는 생각이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다. 숫자(순위) 약속은 내가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은 동료들과 함께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