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가 23일 잠실 LG전 6회 이날 두 번째 홈런을 뽑아낸 뒤 홈으로 들어오고 있다. 잠실=김민규 기자 박병호(34·키움)는 지난 17~19일 고척 돔에서 개인 훈련을 마친 뒤 일찍 퇴근했다.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은 이후 가장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 있던 중에 사흘간 부상자 명단에 올랐기 때문이다. 손혁 키움 감독은 허리와 손목·무릎 통증으로 주사를 맞은 탓이라고 제외 사유를 밝혔지만, 그보단 부진의 영향이 가장 커 보였다.
너무나도 안 맞으면 모두 내려놓고 잠시 휴식기를 가질 만도 한데, 박병호는 1군 동료들과 경기 전 훈련을 소화한 뒤 집으로 돌아가 곧장 TV를 켰다. 그리고 소속팀 키움의 경기를 TV 중계로 지켜봤다. 그라운드에서 한발 물러나 잠시나마 팬의 입장으로 봤다. 공교롭게도 그가 빠진 18일과 19일 키움은 주효상의 이틀 연속 끝내기 안타로 이겼다. 박병호는 "쉴 때도 팬심으로 야구를 봤는데, 끝내기 안타에 소리를 질렀다"고 웃었다.
짧은 휴식기는 그에게 기분 전환의 계기로 작용했다. 그리고 우리가 알던 '박병호'로 돌아왔다.
1군에 복귀한 뒤 세 경기를 치렀을 뿐이지만, '홈런타자 박병호'의 컴백을 선언하기에 충분한 성적표다. 3경기(9타수 6안타 3홈런 5타점)에서 모두 안타와 타점을 올렸고, 8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으로 생애 6번째 홈런왕 타이틀 경쟁에도 합류했다.
KBO 리그를 대표하는 홈런왕 박병호는 시즌 출발이 안 좋았다. 좀처럼 슬럼프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부상자 명단에 오르기 전인 지난 16일까지 홈런 7개를 때렸지만, 시즌 타율이 0.197에 그쳤다. 규정 타석을 채운 58명의 타자 중 꼴찌였다. 직전 10경기에선 타율 0.094로 더 맥을 못 췄다. 그의 이름값을 고려하면 아주 초라한 성적표였다. 타순 변경도 효과가 없었다. 박병호도 "이런 슬럼프는 처음이었다. 솔직히 안 좋은 모습이 너무 길었다"며 "뭘 해도 안 되더라. 걷잡을 수 없었다"고 떠올렸다.
부상자 명단에 오른 박병호는 재충전의 시간을 통해 여유를 되찾았다. 지난 20일 SK와 가진 1군 복귀전에서 솔로 홈런을 때린 그는 다음날(21일)에도 적시타로 타점을 올렸다. 23일 LG와 경기에서는 시즌 첫 4안타 경기에 몸에 맞는 공을 포함해 100% 출루했다. 특히 한 경기에 두 개의 홈런을 쏘아올리며 8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달성했다.
박병호가 23일 잠실 LG전 8회초 2사 1루에서 안타를 치고 있다. 잠실=김민규 기자 특유의 힘을 앞세운 135m, 133.9m의 상당한 비거리를 떠나 타구 방향에 주목한다. 2개의 홈런 모두 국내에서 가장 큰 잠실구장의 가운데 담장을 넘겼다. 나머지 2개의 안타는 각각 좌측과 우측을 향해, 박병호는 이날 좌중우 다양한 방면으로 안타를 뽑았다. 박병호는 "2개의 홈런 타구가 중앙을 향했다는 점은 컨디션 회복의 좋은 징조다"며 "모처럼 좋은 타구가 나와 나도 신기하다"고 웃었다.
스스로 분석한 긴 슬럼프의 원인은 심리적인 영향에서 찾는다. 성적이 안 좋아 쫓겼다는 것. 그는 "스트레스가 컸다"며 "코칭스태프의 배려로 (잠시 휴식기를 가지며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조금 더 일찍 쉬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가졌다"고 덧붙였다.
박병호는 타격 부진으로 4번 타자를 내려놓았다. 부상자 명단 등록 전에는 2번, 복귀 후에는 5번 타순에 배치되고 있다. 원래 '키움 4번타자'의 되찾는 것에 대해선 "부진할 때엔 4번 타자로 출장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다"며 "타순은 감독님의 뜻에 달려있다. 나는 상관없다"고 말했다.
박병호의 부진 속에 예년보다 힘이 떨어진 모습이던 폭발적인 화력도 점차 살아나고 있다. 이후 키움은 17일부터 23일까지 6연승의 신바람으로 상위권 경쟁에 합류했다. 팀을 대표하는 박병호는 "(순위 싸움이 한창이라) 더 많이 타격에서 보여줘야 할 시기다. 사흘간의 휴식 후에 타석에 임하는 자세나 여유, 타격 타이밍이 한결 좋아진 것 같다. 지금이라도 타격감을 찾아 다행이다"고 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