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보다 해외에서 코로나19 치료제 가능성으로 먼저 인정받은 기업이 있다. 김동연 대표이사가 2009년부터 이끌고 있는 일양약품이다. 일양약품에서 개발한 신약 ‘슈펙트’는 국내 제약사의 코로나19 치료 물질로는 처음으로 글로벌 임상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 가득한 건 아니다. 지난 1일 서울 강남 사옥에서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김동연 대표를 만났다.
러시아서 임상 3상 준비…계획보다는 늦어져 슈펙트는 미국에서 코로나19 표준치료제로 인정받은 렘데시비르보다 우수한 코로나19 바이러스 사멸 효과를 인정받아 지난달 러시아에서 임상 3상을 승인받았다. 김 대표는 “러시아 임상 3상이 6월 안에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6월 첫째 주 슈펙트를 러시아로 보낼 예정이었지만 보내지 못했고, 임상 3상 일정에 차질이 예상되고 있다.
김 대표는 러시아 및 인접국인 벨라루스 지역 내 11개 의료기관에서 코로나19 경증·중등도 환자 145명을 대상으로 임상을 진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은 승인됐지만 환자 확보와 병원 섭외 등 아직 해야 할 절차가 많이 남아있어 6월 내 임상 개시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김 대표는 “러시아 정부에서 인정한 코로나19 표준치료법과 슈펙트 투여군을 비교해 증상 완화, 회복 시간 단축 등 치료 효과를 확인할 예정이다"이라며 "환자가 급증하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는 경증·중등도 환자의 적극적인 치료로 병원 입원 기간을 줄이고 중증으로 진행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러시아 임상 3상에 대해 설명했다.
러시아는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8000명~1만명에 달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일양약품에 SOS를 보냈고, 러시아의 슈펙트 판권을 보유하고 있는 제약사 알팜에서 임상시험 비용도 전액 부담하기로 했다. 임상 3상은 의약품 개발의 마지막 단계라서 러시아의 임상이 성공적으로 완료되면 코로나19 치료제로 쓰일 수 있다. 그렇지만 김 대표는 “언제 임상이 완료될지는 예상하기 어렵다”고 했다.
신약 '슈펙트' 해외서 먼저 인정…알약 치료제 나오나 슈펙트는 만성 골수 백혈병 치료제로 개발된 의약품이다. 슈펙트는 2012년 국내 신약으로 등록됐다. 슈펙트는 코로나19 치료제 성분을 분석하는 1차 플랫폼에 의해 그 가능성이 먼저 확인됐다. 김 대표는 “약물 재창출 작업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 사멸 효과를 확인했다. 슈펙트와 비슷한 구조를 가진 약인 글리벡이 사스·메르스 바이러스의 체내 증식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논문이 있다”며 “사스·메르스 바이러스는 코로나19와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 계열이다. 이를 토대로 고려대 의대에 의뢰해 슈펙트의 코로나19 바이러스 사멸 효과를 직접 살펴봤다”고 말했다.
사멸 효과는 뚜렷했다. 그는 “시험관 속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슈펙트를 투여했더니 48시간 만에 바이러스만 있는 대조군과 비교해 바이러스의 70%가 감소했다. 렘데시비르·칼레트라·클로로퀸·아비간보다 효능이 우수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러시아 임상 3상에서는 미국에서 코로나19 표준치료제로 인정받은 렘데시비르가 대조군에 포함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슈펙트는 한국에서는 코로나19 치료제로 인정받지 못했다. 주입하는 약물이 아닌 정제형(알약)이라서 투약 여건이 마땅치 않았다.
김 대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두 차례 슈펙트의 코로나19 치료 목적 사용 승인을 받기 위해 신청했지만 상황이 맞지 않았다. 치료 목적 사용 승인은 중증 코로나19 환자를 대상으로 한다. 정제형인 슈펙트를 복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나빠 실제 환자에게 투약이 어려웠다”며 “정식 임상시험을 고려했지만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줄면서 이조차 여의치 않았다”고 말했다.
임상 3상에 성공한다면 국내에서도 코로나19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김 대표는 “7월 족제비로 슈펙트의 코로나19 치료 효과를 확인할 예정이다. 러시아 임상, 국내 동물실험 등 결과를 다각도로 살펴보고 슈펙트의 국내 적응증 추가 신청할 예정이다. 식약처에서 승인하면 국내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신약 신물질이 미래 판가름…노하우 많이 쌓았다"
김 대표는 2013년부터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이사장직도 맡고 있다. 그만큼 신약에 대한 열정이 높다. 김 대표는 일양약품에서도 여전히 신약 개발 관리의 중책을 맡고 있다. 그는 1976년 중앙연구소 입사로 일양약품과 인연을 맺었다. 2022년 3월까지 임기가 보장된 상황이라 오너가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다.
2008년 일양약품의 대표이사가 된 김 대표는 재임 기간 2개의 신약 개발에 앞장섰다. 놀텍과 슈펙트다. 항궤양제인 놀텍은 약효를 인정받아 중국과 러시아, 멕시코 등 38개국에 기술수출 계약을 했다. 최근 계약한 3건을 제외하고 놀텍이 글로벌 8개사와의 기술수출 계약 규모는 2억1020만 달러(2500억원)에 달한다. 슈펙트의 경우 계약금액이 공개된 5개사와 4000만 달러(476억원)의 기술수출 계약을 했다. 하지만 놀텍의 경우 계약금으로 수취한 금액이 100만 달러(12억원)에 불과하다. 슈펙트도 계약 규모의 5%만 계약금으로 받았다.
일양약품의 글로벌 성과를 앞세운 김 대표는 “향후 제약사의 경쟁력은 신약 신물질로 판가름날 것으로 본다. 신약의 연구개발 기간이 길지만 성공하면 1000억원의 매출은 쉽게 올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놀텍과 슈펙트는 국내 매출만 각각 300억원, 78억원 이상을 기록하는 등 매년 증가세를 보인다.
일양약품은 2019년 232억원 연구개발비로 사용했다. 매출은 해마다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는데, 올해는 3500억원으로 잡고 있다.
김 대표는 “신약을 개발하면서 많은 경험을 쌓았고, 향후 우리의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가 경증까지 잡는 정제형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 성공해 비상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