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 가능성이 있는 KBO 기록위원이 별도의 조치 없이 현장에서 계속 일하고 있다. KBO의 안일한 대처일까, 적절한 무죄 추정의 원칙 적용일까.
지난달 29일 KBO는 기록위원 A씨의 2500경기 출장(역대 6호) 소식을 전했다. 올해로 30년 차 A 씨는 기록위원장 출신 베테랑이다. KBO는 표창규정에 따라 향후 관련 기념상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기록위원의 출장 기록은 그라운드 밖에서 쌓아 올린 금자탑 중 하나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업무 특성을 고려하면 더 의미가 있다. 하지만 A 씨를 둘러싼 사건을 고려하면 그의 경기 출장 여부는 허투루 볼 수 없는 사안이다.
KBO는 지난 3월12일 부정 청탁과 관련, 수서경찰서에 '대대적으로' 수사를 의뢰했다. 지난해 12월 KBO 클린베이스볼센터에 접수된 '전직 프로야구 대표이사와 현직 심판위원, 현직 기록위원이 2016년 정규시즌 기간 함께 골프를 쳤다'는 제보가 발단이었다. 제보자는 전 프로야구 대표이사의 최측근으로 골프를 쳤다는 현직 기록위원이 바로 2500경기 출장을 달성한 A 씨다.
'골프를 쳤다'는 게 확인되면 국민체육진흥법에 저촉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체육진흥법 제14조 3항에는 '전문체육에 해당하는 운동경기의 선수·감독·코치·심판 및 경기단체의 임직원은 운동경기에 관하여 부정한 청탁을 받고 재물이나 재산상의 이익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돼 있다. 골프를 접대로 해석할 경우 청탁으로 연결될 여지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야구규약 제148조 4항에도 '경기에 관하여 부정한 청탁을 받고 재물이나 재산상의 이익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KBO가 클린베이스볼센터 내 자체 해결 대신 이례적으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도 사건의 심각성이 크다는 걸 의미했다.
사건의 핵심인 전직 프로야구 대표이사는 구단을 떠난 상태다. KBO가 직접 징계를 내릴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기록위원과 심판위원은 다르다. 3월 당시 KBO 관계자는 "대면 조사를 해보니 관련 내용을 부인했다. 골프를 친 것만 확인되면 내부자(심판위원·기록위원)는 징계가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기록위원 A 씨는 물론이고 심판위원 B 씨도 현재 2군 경기를 소화 중이다. 두 사람은 모두 기록위원장과 심판위원장을 역임했지만, KBO가 '골프 사건'을 자체 조사하던 지난 2월 공교롭게도 위원장 직함을 나란히 내려놨다. 이들의 위원장 하차 소식은 비교적 미디어의 관심이 뜸하다 할 수 있는 금요일 오후 '조용히' 처리 됐다. 그러나 이후 평기록위원, 평심판위원으로 복귀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현장에 나가고 있다.
류대환 KBO 사무총장은 일간스포츠와 통화에서 "처음에는 업무 정지를 했는데 내부 법률 검토와 노무사를 통해 확인한 결과 아직은 무죄 추정으로 가야 하는 게 맞는다는 결론이 나와 복직시켰다"며 "3월에 사건을 접수했고 그 이후 정직을 풀었다. 올해 개막전부터 뛰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심판위원은 부담이 있으니까 징계를 풀어도 1군에 못 올라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여러 가지 얘기가 나온다. A 구단 운영팀 관계자는 "일반 회사라면 무죄 추정의 원칙이 맞을 수 있다. 하지만 야구단은 민법이나 형법만큼 중요한 야구단 정서법이라는 게 존재한다. 이걸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B구단 운영팀 관계자는 "무죄 추정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전과 동일하게 현장에 나오는 게 맞는 처사인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KBO가 스스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건 사상 초유의 일이다. '골프 사건' 제보자는 전 프로야구 대표이사를 수 년 동안 모셨던 최측근으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알고 있는 관계자다. 관련 내용을 강력하게 제보해 공이 경찰까지 넘어간 상태다.
비위 사실이 신고된 기록원과 심판위원의 현장 업무 수행은 계속 진행중이다. 경찰 수사 결과에 따라 KBO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질 수 있는 사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