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손자’ 이정후(22·키움)가 보여줄 능력의 한계는 어디일까. 분명한 건 그의 다양한 능력 중에 ‘해결사’도 한 가지라는 점이다.
이정후는 27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키움과 LG의 연습경기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됐다. 손혁 키움 감독은 "이정후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 뺐다"고 설명했다. 키움이 1-2로 뒤지던 9회 말, LG 마무리 고우석이 2사 이후 세 타자 연속 볼넷을 내주며 만루를 허용했다. 이정후가 대타로 나섰다. 고우석은 빠른 공 초구에 이어, 2구째 슬라이더를 던졌다. 직구를 노렸던 이정후의 방망이가 허공을 갈랐다. 이정후는 투수의 유인에 넘어가지 않고 직구를 기다렸다. 4구째 빠른 공을 때려 우익수 앞 적시타를 만들었다. 키움의 3-2 역전승. 이정후의 노림수와 대처 능력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경기가 끝난 뒤 이정후를 만났다. 그는 “감독님과 타격 코치님이 중요한 상황에 내보낸다고 해서 준비하고 있었다. 좋은 타구가 나와서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2구째) 직구를 노렸는데 안 맞았다. 슬라이더를 또 던지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고우석의 주 무기인 빠른 공을 예상했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이정후가 프로에 와서 끝내기 안타를 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연습경기라도 그에게는 의미 있는 안타다. 올 시즌 목표가 ‘해결 능력 키우기’였다. 그는 데뷔 이래 주로 1, 2번 타순에 배치됐다. 하지만 지난해 타점왕 제리 샌즈(일본 한신)가 팀을 떠나면서 중심 타선에도 자주 기용되고 있다. 그는 “올해 (박)병호 형, (김)하성이 형 사이에 들어가면 상대 투수가 승부를 걸어올 수 있다. 오늘 같은 기회가 자주 올 것 같다. 타점을 많이 올리고 싶다”고 말했다.
수퍼스타 이종범(50)의 아들 이정후는 프로 데뷔 후 매년 성장세를 보였다. 2017년 신인 최다안타 기록(179안타, 타율 0.324)을 세웠고, 아버지가 받지 못한 신인왕을 차지했다. 이종범 대신 1993년 신인왕을 차지한 건 양준혁이다. 이정후는 2018년 부상으로 고전하면서도 타율 0.355를 기록했고, 생애 첫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지난해엔 타율 0.336(4위), 193안타(2위)를 기록하며 2년 연속 황금장갑의 주인공이 됐다.
부자(父子) 국가대표 타이틀도 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아버지 코치와 아들 선수가 금메달을 합작했다. 지난해 국가대항전 프리미어12(준우승)에서도 맹타를 휘둘러 베스트 12에 선정됐다. 내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과 도쿄올림픽 때도 이정후가 없는 대표팀은 상상하기 힘들다.
최근엔 부자가 동반출연한 야구게임 광고가 화제다. 이정후는 "(아버지 이름을 '종범아'라고 부르는 장면은) 도저히 못 할 것 같아 10분 넘게 버티다가 촬영했다. TV에도 나오는 줄 몰랐다. 너무 오글거려서 요즘 TV를 잘 안 본다. 그런데 그 광고가 유튜브에도 반복해서 나와 광고 없는 유료 서비스를 신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래도 아버지가 전에 온몸에 금색을 칠하고 찍었던 (신문) 사진보다 나은 것 같다. 아버지와 재밌는 추억을 쌓은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