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리더십 시험대에 오른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핵심 자산을 내놓는다. ‘허리’ 두산중공업을 살리고 그룹의 경영 정상화를 위한 고강도 자구안의 일환이다.
두산그룹은 지난 13일 KDB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 등이 포함된 채권단에 자회사 매각 등을 포함한 자구안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알짜 기업인 두산솔루스와 세계 기술력 1위를 자랑하는 두산중공업의 담수화 사업부의 매각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료전지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두산퓨얼셀의 매각도 거론되고 있다. 두산 측은 “대주주의 책임 경영을 이행하기 위해 뼈를 깎는 자세로 매각 또는 유동화 가능한 모든 자산에 대해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두산은 두산중공업의 유동성 위기로 국책은행에서 1조원을 수혈받는다. 이 같은 지원을 받기 위해 경영 정상화 실행 계획이 담긴 자구안을 제시했다. 전기차용 배터리의 핵심 부품 ‘전지박’을 생산하는 두산솔루스의 매각 방안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두산솔루스가 매각되면 8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전망이다. 또 두산퓨얼셀을 매각하면 3800억원 규모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두산솔루스는 두산(13.94%)과 박씨 오너가 지분(33.58%)이 50%에 가깝다. 박정원 회장도 5.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두산솔루스가 매각되면 오너일가가 두산중공업 회생을 위해 지분으로 사재를 출연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대주주의 책임 경영에 대한 질책도 이어지고 있다. 보통 극한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 오너가에서 사재 출연으로 극복 의지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고 조양호 회장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유동성 위기에 각 400억원, 300억원의 사재를 출연했다. 재계 관계자는 “두산의 경우 오래전부터 위기설이 나왔는데, 오너가의 특별한 움직임이 없었다”고 말했다.
두산중공업은 차입금이 4조9000억원에 달한다. 국책은행에서 1조원을 받는다고 해도 한참 부족하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것만 4조2000억원에 달한다. 오는 27일 만기인 외화공모사채 6000억원을 수출입은행이 대출로 전환해준다고 해도 여전히 부족하다. 두산으로서는 알짜 회사들을 최대한 매각해야 경영 정상화의 기틀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두산 측은 “재무구조 개선 계획의 성실한 이행을 통해 두산중공업 경영 정상화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며 "채권단에 제출한 재무구조 개선계획은 향후 채권단과의 협의 및 이사회 결의 등을 거쳐 최종 확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수출입은행은 두산이 제시한 자구안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만약 그룹이 강조한 대주주의 뼈를 깎는 자세가 보이지 않는다면 두산중공업의 재무구조 개선은 더욱 험난해질 전망이다.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진 두산은 박 회장이 아끼는 두산건설 매각과 인력 구조조정 확대 등을 포함시켰을 가능성도 있다. 또 두산중공업 자회사인 두산인프라코어와 손자회사인 두산밥캣을 분리해 지배구조를 개선한다는 내용이 포함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