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스포츠 2014년 09월 19·20일자 주말판 1면 '스타'의 시작은 언론이다. 신문의 1면은 그 시대를 상징하는 스타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장소다. 1면의 첫 등장. 스타로 향하는 과정이 시작됐음을 세상에 알리는 메시지다.
'Messi's first day at MARCA'
82년 된 스페인 유력지 '마르카'가 최근 게재한 기사다. 지난 20년 동안 지면에 실린 기사를 분석한 뒤, 세계 최고의 스타가 된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를 마르카가 '처음으로' 소개한 날을 기념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51년의 역사를 가진 스포츠지 일간스포츠도 특별기획을 준비했다. 한국에서 등장한 '메시의 사례'를 소개한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10년 동안 '생애 첫 1면'을 장식한 축구 스타 이야기다.〈편집자 주〉
브라질 월드컵이 당시 막내였던 손흥민(28·토트넘)의 눈물과 함께 16강 좌절로 끝났던 2014년. 지금으로부터 6년 전 그 가을에는 월드컵의 바통을 이어받아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이 치러졌다. 진종오(41), 양학선(28), 박태환(31), 손연재(26) 등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안방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 나섰고 종합 2위 달성이라는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이 개막한 2014년 9월 19일, 일간스포츠 1면을 장식한 얼굴은 아시안게임 스타가 아닌 '무서운 유망주' 이승우(22·신트트라위던)였다.
이승우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 16강 좌절로 가라앉았던 한국 축구의 분위기를 끌어올린 주인공이었다. 2011년 바르셀로나 유스팀에 입단하며 일찌감치 축구팬들의 레이더에 걸렸던 이승우는 이후 연령대 팀을 월반할 정도로 맹활약을 이어가며 모두의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2013년 16세 이하(U-16) 대표팀에 소집된 이승우는 지역예선을 거쳐 2014년 9월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U-16 챔피언십에서 자신을 향한 관심에 화끈하게 보답했다.
모두가 궁금해 했던 '바르샤 유망주'는 이 대회에서 독보적인 기량을 과시하며 그라운드를 휘저었다. 4경기 연속골(5골 4도움)로 한국을 결승까지 이끌었고, 특히 일본과 8강전에서는 50m 드리블 질주 후 수비수 4명을 따돌리고 골을 넣는 압도적인 플레이로 국내는 물론 세계 외신의 주목을 받았다. 이어진 4강전 시리아와 경기에서도 홀로 1골 4도움을 기록하며 한국의 7-1 대승을 이끌어 '이승우 신드롬'의 발판을 놨다.
연령별 대표팀이긴 하지만, 또래들을 월등히 압도하는 이승우의 기량에 그를 향한 관심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 중에서도 이승우의 어린 나이에 주목, 그가 한국 축구사에 또 하나의 새로운 '기록'을 쓸 수 있을지가 화제가 됐다. 바로 최연소 A매치 출전 기록 경신이다. 인천 아시안게임 개막이라는 '빅 이슈'를 제치고, '유망주' 이승우가 1면에 등장한 배경이다.
일간스포츠 2014년 09월 19·20일자 주말판 14면 우리는 이미 이승우가 최연소 A매치 출전 기록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당시, 이승우가 한 몸에 짊어진 기대는 그만큼 컸다. "16세 이승우, 1년 안에 A매치 뛸까"라는 제하의 기사는 "'특급 유망주' 이승우 열풍이 거세다. 청소년 대회를 휩쓴 그가 김판근(54)이 갖고 있는 역대 최연소 A매치 기록을 깰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고 전한다. 시리아전까지 4경기 연속골을 터뜨리며 청소년 무대를 평정한 이승우의 활약상과 함께, 2014년 초반 그가 했던 인터뷰를 인용해 "최연소 A매치 출전 기록을 깨고 싶다"던 바람을 되새겼다.
기사가 게재된 시점을 기준으로, 당시 이승우의 나이는 만16세262일이었다. "한국 A대표팀의 최연소 출전 기록은 김판근이 갖고 있다. 1983년에 세운 17세 242일이다"라며 "31년 동안 아무도 김판근의 아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2010년 이후 10위 안에 이름을 올린 것은 손흥민(18세171일) 뿐이다"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아직 이승우에게는 1년이라는 시간이 더 남았다"는 희망적인 관측도 곁들였다.
어린 유망주들이 대표팀에 데뷔한 다른 나라 사례도 소개했다. 당시 기준으로 17세75일에 헝가리와 A매치에 출전해 데뷔전을 치른 잉글랜드의 시오 월콧(31·에버턴) 16세315일 만에 데뷔전을 치른 가레스 베일(31·레알 마드리드)과 그의 기록을 깬 해리 윌슨(23·본머스) 그리고 15세253일의 기록으로 A매치에 데뷔한 노르웨이의 마르틴 외데가르드(22·레알 소시에다드) 등이 소개됐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승우의 최연소 A매치 출전 기록 달성은 불발됐다. 기사에서도 "기록만 보면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한국은 유망주에게 보수적"이라며 "김판근을 제외하면 2위 김봉수(50)부터 9위 구자철(37)까지 모두 18세가 넘어서야 A매치에 데뷔했다"고 회의적인 평가를 내렸다. 또 "20대가 되기 전에 A매치에 데뷔한 선수도 20명에 그친다"며 "아직은 너무 이르다, 단계를 밟아 성장해야 한다"는 축구계의 반응을 전했다.
기대를 걸었던 부분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이제는 악연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린 울리 슈틸리케(66) 감독 선임이라는 변수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독일에서부터 유소년 육성에 관심이 많았다. 마르코 로이스와 마리오 괴체, 토마스 뮐러 등 황금세대를 키워냈다"고 설명한 뒤 "그의 손에서 새 역사가 쓰일지 지켜볼 일"이라고 기대감을 보였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은 끝내 이승우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고, 바르셀로나가 유소년 해외 이적 조항을 어겨 국제축구연맹(FIFA)으로부터 출전 정지 3년 징계를 받는 등 악재까지 겹쳤다.
신트트라위던 페이스북 한참 경기에 나서며 성장해야 할 시점에 받은 징계로 인해 주춤하게 된 이승우는 징계 해제 후 팀에 복귀해서도 좀처럼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 뒤의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아는대로다. 경기에 뛰기 위해 헬라스 베로나(이탈리아)로 이적했고, 2019년에는 벨기에 신트 트라위던으로 팀을 옮겼다. 이적 후 한 경기도 뛰지 못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던 이승우는 소속팀 감독이 바뀐 뒤 조금씩 중용되기 시작했고, 2경기 연속 선발 출전하며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하지만 신뢰를 얻기 시작한 시점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벨기에 주필러 리그가 4월 3일까지 중단돼 또다시 불운이 겹쳤다. 풀릴 듯 풀리지 않는, 지독한 불운 속에서 '무서운 유망주' 이승우의 노력은 아직도 계속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