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글로벌 화장품 ‘유통 공룡’ 세포라가 충성도 높은 국내 VIP 고객을 울리고 있다. 지난해 10월 세포라코리아가 한국에 상륙하자 해외 세포라 공식 사이트에서의 직접 구매(이하 직구)를 차단했다. 이에 수년 동안 마일리지를 쌓아왔던 고객들은 하루아침에 현금처럼 쓸 수 있었던 포인트와 고객 등급을 날릴 처지에 몰렸다. 세포라 ‘얼리어답터(신제품을 남보다 빨리 구입해 사용해보는 사람들)’였던 슈퍼 충성 고객들은 “세포라코리아가 로열티를 가진 소비자는 외면한 채 오로지 새 고객 유치에 혈안이 돼 있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세포라의 인터내셔널(미국) 홈페이지. 소비자들은 지난해 10월 세포라코리아가 국내 입점하기 전까지 해외 세포라 홈페이지에서 '직구'를 해왔다.
이미 잡은 물고기? 충성 고객 마일리지·직구 막은 세포라
20대 여성 서누리(가명·회사원) 씨는 요즘 세포라를 떠올리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세포라 마니아였던 서씨는 수년 전부터 세포라 홈페이지에서 매년 평균 1000달러(약 120만원) 이상 직구를 해왔다. 지난해까지 세포라가 3년 연속 부여한 그의 고객 등급은 최고 수준인 ‘VIB Rouge(브이아이비 루즈)’다. 현재 가용 포인트는 2000점 이상이다.
서씨는 “브이아이비 루즈는 세포라 고객 중에서도 구매 실적이 최고 수준일 때 주어지는 등급이다.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세포라 마니아들에게 중요한 부분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서씨는 매년 평균 3000~5000포인트를 적립해왔다. 현재 남아있는 2000포인트는 현금으로 환산하면 200만원가량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런데 서씨는 세포라코리아가 한국에 입점한 시기인 지난해 10월 무렵 다시 세포라 사이트에 접속해 물건을 사려다가 깜짝 놀랐다. 세포라가 한국을 직구 배송 지역에서 제외하면서 물건을 살 수 없게 돼서다. 그동안 애지중지 쌓아온 포인트와 브이아비 루즈 등급에 따른 혜택을 받는 길도 막혔다.
서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세포라코리아 홈페이지에도 접속해 내 계정을 입력했는데 거절됐다. 계정 인식 자체가 되지 않았다”며 “당연히 세포라 본사에서 쌓은 20만원 이상의 마일리지 연동도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세포라인터내셔널 계정을 세포라코리아 홈페이지에 접속하기 위해 입력하자 '올바르지 않은 이용자나 ID'라는 문구가 뜨고 있다. 현재 세포라에서 기존에 쌓아둔 포인트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배송대행지(이하 배대지)’를 이용해야 한다. 미국 등 배송 가능한 국가의 지역에 배송을 대행해주는 주소를 적어 넣고, 이를 다시 한국으로 배달받는 방식이다. 당연히 배송비가 추가로 들고 비효율적이다.
문제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세포라는 수년 전부터 배대지를 통해 물건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중간 판매 업자라고 보고 판매를 거절하고 있다.
30대 여성 김성은(가명·프리랜스) 씨는 “배대지가 튕기면서 한정판 화장품을 구매하지 못했다. 이후 속이 상해서 세포라 쪽은 쳐다 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등급 혜택을 쓸 수 있는 권리가 박탈됐는데 이에 따른 공지나 동의를 받은 기억이 없다는 점이 가장 속상하다.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서씨는 “세포라에서 세포라코리아 설립에 따른 포인트 사용과 직구 차단 등과 관련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알았다면 미리 포인트를 쓰는 등 조처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만약 약관 등을 수정했다면 소비자의 동의를 어떤 식으로든 충분히 구해야 한다. e메일과 SMS를 모두 찾았지만, 그런 내용은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세포라가 3년 연속 VIB Rouse 등급을 받은 충성고객에게 보낸 각종 할인 혜택을 담은 메시지.
소비자원·경실련·법조계 “법률 자문 및 소송 가능”
세포라 본사와 세포라코리아 양쪽에서 ‘방치된’ 충성 고객들은 포인트를 날릴 처지에 몰리자 발만 구르고 있다.
세포라 포인트와 관련한 소비자의 피해사례를 인지한 한국소비자원과 공정거래위원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측 관계자들은 소비자가 피해구제 신청할 경우 법적 조언 및 구제 조처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11일 “해외 사업자가 국내 법인을 만들면서 발생하는 문제로 국내에서는 아주 드문 경우다. 위법적 요소가 있는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소비자가 상담 및 피해 구제 신청을 할 경우 조사를 통해 법률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결과에 따라 요구사항을 사측에 전달하고 해명 및 합의도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위원인 김보라미 변호사는 “법인이 다른 세포라코리아가 본사의 마일리지 정책에 따른 소비자를 구제할 책임을 질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변호사는 “하지만 소비자 관련 법제 등을 위반한 여지가 있다. 법적 검토가 필요하지만, 세포라코리아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해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 법률 소비자센터 위원인 고영석 선문대 법대 교수는 “먼저 세포라의 약관을 살펴보고 관련 내용이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고 전제한 뒤 “소비자 혜택이 중단될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고객에게 충분한 동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례로 국내에서는 소비자 동의를 얻기 위해 수십일에 걸쳐 다양한 방법으로 규정이나 혜택이 바뀌는 부분에 대해 알려야 하는 의무가 있다.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이 세포라코리아에 맞서 시민단체나 공공기관에 도움을 받고 소송을 제기하면 해결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고 입을 모았다.
세포라코리아는 강남 파르나스몰점에 이어서 명동과 신촌에 대규모 매장을 냈다. 최근 ‘온라인 첫 구매 10% 할인’ 행사를 펼치고 있다.
국내 화장품 업체 관계자는 “세포라코리아가 무엇이 중요한지 잘 모르는 것 같다. 본사가 놓친 부분이 있다면 세포라코리아가 챙기는 것이 명성에 걸맞은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종전 세포라 충성고객은 '모르쇠'하면서 온라인 신규 고객 할인 행사를 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세포라코리아 관계자는 12일 일간스포츠와의 전화통화에서 “세포라코리아는 싱가포르 등 아시아 지역에 포함돼 기존 세포라 인터내셔널 사용자의 계정과 마일리지 연동 등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 세포라 VIP 회원이신 고객에게는 블랙 혹은 골드 등급으로 전환해 국내에서도 세포라 VIP 멤버십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원하는 고객은 센터로 문의를 해야한다"고 했다.
그러나 브이아이비 루즈 등급인 소비자는 “세포라코리아로부터 등급 전환에 대해 고지받은 바 없다. 나는 세포라에서 온 모든 이메일과 SMS를 확인하고 메일을 보유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설령 보냈다고 해도 고객이 인지하지 못한 수준일 것이다. 또한 지금도 세포라 브이아이비루즈 고객 등 종전 인터내셔널의 VIP고객들은 여전히 세포라코리아의 계정 접속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