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신년합동인사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인사하고 있다. 이 부회장 옆으로 손경식 CJ 회장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구상에 제동이 걸렸다. 그동안 공들였던 손경식 CJ 회장이 17일 ‘국정농단 사건’ 4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당초 손 회장은 17일 공판 때 증인으로 출석이 예정됐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지난해 12월 6일 증인으로 손 회장을 신청했다. 손 회장도 “재판부에서 오라고 하면 국민 된 도리로서 가겠다”며 출석을 예고한 바 있다.
하지만 손 회장은 공판을 사흘 앞두고 돌연 불출석 사유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CJ 측은 “일본 출장 등 경영상의 이유로 도저히 출석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이 부회장은 원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면서 4차 공판 전까지 ‘내부의 실효적인 준법감시 제도를 마련하라’고 했다.
재판부의 요구대로 삼성은 외부의 독립적인 준법감시위원회(이상 준법감시위)를 내달 초 출범할 계획이다. 위원장을 포함해 준법감시위 위원 7명도 꾸려졌다. 지난 13일에는 삼성전자 사장단이 준법실천 서약서에 서명까지 하는 등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여기에 손 회장이 공판에 출석해 이 부회장 측에게 옹호적인 증언을 해준다면 양형을 충분히 낮출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런 밑그림을 그렸지만 손 회장의 불출석 변수로 재판 전략에 차질이 예상된다. 이 부회장과 이재현 CJ 회장은 사촌지간이다. 손 회장이 이재현의 외삼촌이기도 해 이 부회장 입장에서는 기대감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CJ가 선긋기에 나서면서 4차 공판에 사활에 건 삼성 변호인단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 부회장 공판의 쟁점은 승마 지원 여부다. 대법원은 말 세 필 구입금액(약 34억원)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약 16억원)을 뇌물로 인정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코어스포츠 용역대금(약 36억원)만 뇌물로 인정하는 등 판결이 엇갈리고 있다.
이 부회장은 승마 지원이 ‘수동적 뇌물공여’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손 회장의 증언이 절실했다. 손 회장은 지난 2018년 1월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1심 재판에 출석해 “2013년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으로부터 ‘대통령의 뜻’이라며 이미경 CJ 부회장을 퇴진시키라는 압박을 받았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증언을 받아낸다면 이 부회장의 승마 지원이 ‘수동적 뇌물공여’라는 데 힘이 실릴 수 있었다.
삼성 측은 준법경영 방안을 재판부에 제출하는 등 집행유예까지 양형을 낮추겠다는 복안이다. 징역형만 피한다면 삼성의 경영 리스크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17일 4차 공판에서 최종 선고가 내려지는 건 아니다. 이 부회장의 최종 선고 공판은 오는 2월에 열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