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에서 게임 개발을 총괄하는 최고창의력책임자인 김택진 대표가 지난 9월 리니지2M 쇼케이스에서 키노트를 발표하고 있다. 2019년 대한민국 게임업계에서 가장 빛난 CEO를 꼽는다면 단연 김택진(52) 엔씨소프트 대표다. 김택진 대표는 ‘리니지M’에 이어 지난달 선보인 ‘리니지2M’도 성공시키며 모바일 게임 시장을 휩쓸었다. 레드오션이 된 지 오래된 모바일 시장에서 하나도 힘든 흥행 1위 게임을 두 개씩이나 연이어 탄생시킨 것이다.
이에 엔씨소프트는 PC뿐 아니라 모바일에서도 성공할 줄 아는 게임개발 명가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게 됐다. 모바일 게임 시장을 본격 공략한 지 불과 3년 만에 이룬 성과다.
1세대 게임개발자인 김택진 대표의 IP(지식재산권)와 기술 개발에 대한 고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3년 만에 모바일 시장 왕좌에
김택진 대표는 지난달 말 출시한 모바일 MMORPG(다중접속 역할수행 게임)인 ‘리니지2M’으로 또다시 흥행 홈런을 쳤다.
리니지2M은 2003년 출시된 PC MMORPG ‘리니지2’를 기반으로 만든 모바일 게임으로, 김택진 대표가 “몇 년간 따라올 게임이 없다”며 기술적 진화를 자신한 작품이다.
리니지2M은 출시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아 사전 예약자 수 738만명으로 국내 최대 기록을 세웠다.
출시 후에는 무서운 기세로 흥행 가도를 달렸다. 서비스 첫날 애플 앱마켓에서 매출 1위에 올랐고, 나흘 만에 구글 앱마켓에서도 정상에 오르며 양대 앱마켓을 석권했다.
이는 2년간 절대 강자였던 리니지M을 제친 것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리니지M은 김택진 대표가 2017년 6월 21일 정식 출시한 모바일 MMORPG다. 지금의 김택진 대표를 있게 한 PC 온라인 게임 ‘리니지’를 모바일에 옮겼다. 특히 화려한 3D 그래픽 대신 도트 그래픽을 그대로 적용했음에도 출시 이틀 만에 구글 앱마켓에서 매출 1위에 올라 892일(만 2년 5개월 8일) 간 정상을 지켰다.
리니지2M은 이런 대단한 리니지M을 제치고 모바일 게임 시장의 새 왕이 됐다.
리니지 김택진 대표로서는 연이어 두 개의 게임을 흥행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것도 모바일 게임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한 지 3년 만이다.
엔씨는 2016년 12월 첫 모바일 게임으로 ‘리니지 레드나이츠’를 선보이며 모바일 시장에 첫발을 내디뎠다. 리니지 레드나이츠는 당시 양대 앱마켓 매출 1위를 기록하는 등 첫 모바일 게임치고는 좋은 성과를 냈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하지만 2017년 6월 출시된 리니지M이 성공하면서 김택진 대표의 모바일 시대가 열리게 됐다.
엔씨 관계자는 “리니지 레드나이츠 출시를 시작으로 차근차근 모바일 게임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를 쌓아갔다”며 “리니지M의 성공은 그 연장 선상에서 이뤄낸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그저 놀랍고 부럽기만 하다. A 게임사 관계자는 “요즘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신작이 성공하기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렵다”며 “그런데 두 개나 연속으로 히트시켰다. 이게 20년 넘게 국내 게임산업을 이끌고 있는 김택진 대표의 힘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늦은 출발, 매출도 정체…그래도 꿋꿋이 걸어간 김택진의 길
김택진 대표는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우뚝 서기까지 답답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PC 온라인 게임만 붙잡고 있던 엔씨소프트는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모바일 게임이 주류로 떠오르는 상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경쟁사인 넷마블이 2013년부터 모바일 게임에 집중하면서 시장을 독식할 때도 구경만 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넷마블이 2016년 말 엔씨 IP인 ‘리니지2’를 기반으로 개발한 ‘리니지2 레볼루션’을 선보여 첫날 매출 79억원, 일 최고 매출 116억원 등 모바일 시장에서 전무후무한 흥행 기록을 쓸 때도 지켜만 봤다.
엔씨는 모바일 시장 대응이 늦은 탓에 매출도 정체기를 맞았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매출은 7000억~8000억원대에 머물렀다.
업계에서는 “천하의 엔씨도 모바일은 안 되는구나”라는 말이 나왔다.
김택진 대표도 이런 외부의 평가에 조바심을 낼만 했다. 하지만, 흔들림 없이 자기의 속도와 방식으로 모바일로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2016년 4월 개발 조직을 모바일 게임 개발 체제로 전격 개편했다.
조직 개편의 핵심은 ‘속도’였다. 개발 초기는 ‘시드(씨앗)’가 맡고, 시드가 성장하면 ‘캠프’로 승격하는 구조로 조직을 단순화했다. 특히 시드와 캠프 책임자는 각각 예산 집행, 인력 채용 등을 자율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보고도 여러 임원을 거치지 않고 김택진 대표에게 바로 할 수 있도록 해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했다.
김택진 대표의 결단은 통했다. 1년 후 리니지M이라는 옥동자가 탄생했다.
리니지M은 국내 사전예약 550만명, 출시일 접속자 수 201만명, 첫날 매출 107억원 등 당시 모바일 게임 역대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웠다.
김택진 대표의 성공에는 R&D(연구·개발)에 대한 적극적이고 꾸준한 투자도 한몫했다.
그는 매출 성장세가 꺾였던 2015년과 2016년에도 연구개발 인력을 늘려갔다. 2015년 말 2300명이던 연구개발 인력은 2018년 말 3458명으로 50.3% 증가했다. 전체 직원 중 연구개발 인력이 70% 수준이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율도 연간 20% 수준으로, 글로벌 1000대 기업에 속한 국내 25개 중 1위다.
김택진 대표를 옆에서 지켜본 B 게임사 관계자는 “엔씨가 모바일 시장에 늦게 뛰어들어 김 대표의 고심이 깊었다”며 “하지만 자체 IP와 기술력이면 모바일 시장도 충분히 정복할 수 있다는 김 대표의 자신감과 고집이 결국 결실을 맺었다”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 숙제
김택진 대표가 모바일 시장을 평정했지만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다.
모바일 게임이 흥했지만, 원래 잘하던 PC 온라인 게임은 하락세다. PC방 인기 순위 톱10에 엔씨 게임들이 자취를 감췄다. 26일 현재 게임트릭스(게임 순위 서비스)에 따르면 ‘리니지’가 11위, ‘리니지2’가 14위, ‘블레이드앤소울’이 21위, ‘아이온’이 29위다.
매출에서도 리니지M 출시 이후 모바일이 50% 이상을 차지했지만 PC는 그 아래로 떨어졌다.
최근 모바일 시장이 레드오션화되고 정체기를 맞으면서 PC는 물론, 콘솔·VR 등 다양한 플랫폼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게임사들이 늘고 있다. 모바일 성공에 도취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글로벌 게임개발사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는 것도 김택진 대표가 풀어야 할 숙제다.
엔씨는 리니지와 블레이드앤소울·아이온 등 성공한 IP를 갖고 있지만 국내용이지 않으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더구나 리니지M이 출시된 2017년부터 해외 매출 비중도 역대 평균 40% 수준에서 25~30%로 내려갔다.
C 게임사 관계자는 “엔씨가 과거 해외 시장을 꽤 열심히 공략했는데, 지금은 그런지 모르겠다. IP도 글로벌 IP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어 보인다”며 “김택진 대표가 이제는 국내를 넘어서 전 세계 게이머의 사랑을 받는 글로벌 게임개발 명가가 되기 위해 어떤 행보를 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