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이 번리전에서 시즌 10호 골을 넣었다. 네 시즌 연속 두 자릿수 골 기록이다. 전반 32분 70m를 드리블 돌파한 끝에 골을 넣었다. 사진은 공을 몰고 가는 손흥민. [로이터=연합뉴스]전반 32분, 토트넘 진영 페널티 박스 왼쪽 모서리에서 공을 잡은 손흥민(27·토트넘)이 드리블을 시작했다. 상대 선수 5명 사이를 빠르게 돌파했다. 상대 위험지역 근처에서 3명을 더 제쳤다. 골키퍼 정면에서 오른발 슈팅. 골이었다. 11번의 트래핑과 한 번의 슈팅. 12초에 70m를 질주한 손흥민의 ‘축구 마법’에 상대는 와르르 무너졌다.
손흥민의 맹활약에 토트넘(잉글랜드)도 활짝 웃었다. 8일 영국 런던 토트넘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20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16라운드 경기에서 번리에 5-0으로 크게 이겼다. 원더골에 도움 하나를 기록한 손흥민은 시즌 10호 골(9도움) 겸 정규리그 5호 골(7도움)을 기록했다. 최근 4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이다.
박지성(왼쪽)이 AFC 국제선수상 트로피를 손흥민(가운데)에게 전달했다. 오른쪽은 앤디 록스 버그 AFC 친선대사. [AFP=연합뉴스]경기 후 프리미어리그 전체가 ‘손흥민’이라는 키워드로 달아올랐다. 손흥민의 골 장면을 지켜본 잉글랜드 축구 레전드 게리 리네커(59)는 자신의 트위터에 “내 생각엔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골”이라 칭찬했다. 일간지 데일리 메일도 “시즌 베스트 골에 도전할 자격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조세 모리뉴(56·포르투갈) 토트넘 감독은 경기 후 “1996년 보비 롭슨 경과 함께 본 경기가 생각났다”며 “당시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은 호나우두(43·브라질)가 오늘 손흥민처럼 하프라인 근처부터 드리블해 멋진 골을 넣었다. 오늘 손흥민은 손나우두(손흥민+호나우두)였다”고 말했다. 이날 손흥민에게 아시아축구연맹(AFC) 올해의 국제선수상 트로피를 전달하기 위해 현장을 찾은 선배 박지성(39)도 흐뭇한 표정으로 후배의 활약을 지켜봤다.
손흥민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공을 잡았을 때 델리 알리(23·잉글랜드)가 뛰어들어가는 걸 봤지만, 패스 타이밍을 놓쳤다”며 “그냥 내 부스트(증폭·boost) 버튼을 눌렀다. 적절한 타이밍에 전력 질주했고, 2~3초 뒤 (실제로는 12초) 골대 근처에 도달했다. 홈에서 이런 골을 넣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손흥민 골 베스트 5손흥민이 ‘부스트 버튼’을 누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태극마크를 달고 처음 나섰던 국제대회부터 남달랐다. 2009년 나이지리아 17세 이하(U-17) 월드컵 8강전(1-3패) 당시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30m 중거리 슈팅 골을 넣어 이목이 쏠렸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대회 최고의 골’ 중 하나로 꼽았을 정도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나이지리아전 골은 손흥민이 국가대표로서 넣은 여러 골 중 단연 최고”라며 “지난해 러시아월드컵 독일전 골도 인상적이지만, 예술성과 완성도 면에서는 차이가 크다”고 평가했다.
손흥민은 소속팀에서 ‘마라도나급’ 드리블에 이어지는 골을 심심찮게 선보였다. 지난해 11월 첼시전에서 오른쪽 터치라인을 따라 50m를 질주한 뒤 수비수를 제치고 골을 넣어 프리미어리그 ‘이달의 골’ 주인공이 됐다. 지난 2월 레스터시티전에서도 60m를 드리블한 뒤 쐐기골을 터뜨렸다. 70m를 달려 수비수 8명을 제치고 터뜨린 이 날 번리전 골은 손흥민의 최장거리 드리블 득점이다.
승부처에서 더욱 빛나는 득점 본능도 손흥민의 가치를 높인다. 지난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맨체스터 시티(잉글랜드)를 상대로 1, 2차전 합계 3골을 몰아쳐 팀을 4강으로 이끌기도 했다. 한준희 위원은 “손흥민이 발롱도르 30인 최종 후보군에 포함되는데 맨시티전 세 골이 큰 몫을 했다”며 “손흥민의 위상을 한 단계 올려놓은 수준 높은 골들이었다”고 평가했다.
손흥민 본인이 직접 꼽은 ‘역대 최고 골’은 함부르크(독일) 시절이던 2010년 10월, 쾰른을 상대로 넣은 프로 데뷔골이다. 후방에서 길게 넘어온 볼을 오른발로 띄워 올려 골키퍼의 키를 넘긴 뒤 텅 빈 골대에 왼발로 차넣었다. 한준희 위원은 “손흥민의 골 장면에서 1958년 스웨덴 월드컵 당시 펠레의 결승전 득점이 떠올랐다”고 회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