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슬부슬 내리던 빗줄기는 야속하게도 금세 굵어져 그라운드를 적셨다. 모자를 깊이 눌러쓴 유상철(48)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은 우비도 없이 그라운드에 서서 90분 동안 경기를 지켜보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흘러나온 공을 직접 잡아 건네주기도 하고, 박수를 치고 교체돼 들어온 선수의 어깨를 두드려주기도 했다. 멈추지 않고 내리는 빗줄기 속에서 득점 없이 0-0의 공방이 이어지던 후반 30분, 문창진(26)의 발끝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선제골이 터지자 유 감독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피었다. 선수들을 향한 유 감독의 믿음에 인천이 '승리'라는 답가를 전하는 순간이었다.
인천은 24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1(1부리그) 2019 37라운드 상주 상무와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하며 잔류를 향한 희망을 이어갔다. 11위 경남 FC, 12위 제주 유나이티드와 치열한 생존 경쟁 중인 인천은 반드시 이겨야했던 이날 경기에서 승점 3점을 수확하며 시즌 첫 홈 승리에 성공했다.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도 응원을 이어가던 1만1463명의 관중들은 경기가 끝나자 눈물을 흘리며 선수단과 유 감독에게 환호를 보냈다.
이날 상주전은 유 감독이 췌장암 4기 투병 사실을 공개한 뒤 치르는 첫 경기였다. '생존왕' 인천의 잔류 경쟁에 유 감독의 투병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만인의 시선이 인천-상주전에 집중됐다. 담담한 표정으로 그라운드에 나선 유 감독은 경기 내내 벤치에 앉지 않고 선 채로 선수들을 지켜보며 내리는 비를 모두 맞았다. "내 성격에 앉아서 못 보겠더라"며 그저 웃고 만 유 감독은 "선수들이 비 맞아가면서 열심히 뛰는데 나도 같이 하고 싶었다"고 90분의 혈투를 지켜본 심정을 전했다.
인천에 있어 '생존'의 무게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승강제 실시 이후 단 한 번도 K리그2(2부리그)로 내려가지 않고 잔류에 성공했던 인천이라는 팀, 그리고 투병 중에도 꿋꿋이 선수들과 함께 그라운드에 선 유 감독의 건강. 자신들이 짊어진 생존의 무게를 알기에 선수들은 수중전으로 펼쳐진 경기에서 이를 악물고 뛰었고, 인천이 품은 절박함과 간절함은 후반 30분 터진 문창진의 선제골로 이어졌다. 그토록 간절히 기다렸던 선제골이 터지자, 문창진의 골을 어시스트한 무고사(27)는 가장 먼저 유 감독에게 달려와 그를 꽉 끌어안았다. 유 감독도 무고사의 등을 두드려주며 미소를 지었다. 문창진 역시 세리머니를 마친 뒤 유 감독에게 달려와 안겼다.
짜릿한 골로 한 골차 리드를 잡은 유 감독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곧바로 케힌데(25)를 투입했다. 많은 기대를 받고 합류했지만 좀처럼 골을 만들어내지 못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던 케힌데가 극적인 추가골을 터뜨린 건 후반 43분. 곽해성(28)의 패스를 받은 케힌데는 상대 수비수의 압박을 이겨내며 환상적인 추가골을 뽑아냈다. 케힌데의 올 시즌 리그 1호골이었다. 승리가 가장 필요했던 순간, 그야말로 기적처럼 2-0 승리를 일궈낸 인천 선수들 앞에서 유 감독은 밝게 웃었다. 물론 아직 방심할 수는 없다. 같은 시각 경기를 펼친 11위 경남이 성남 FC를 2-1로 꺾으면서 강등 전쟁은 최종전인 38라운드에서 판가름나게 됐기 때문이다. 유 감독은 "2019년의 마지막 홈 경기에서 내년을 기약할 수 있는 좋은 경기를 보여드렸다. 마지막 경기까지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겠다"며 "올 시즌도 꼭 잔류해서 K리그1에 남도록 하겠다. 그리고 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잘 견뎌내고 이겨내, 빠르게 회복해서 좋은 모습으로 다시 찾아뵐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