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가 종종 사람을 잡고, 아니 땐 굴뚝에는 연기가 잘 나지 않는다. 지금 키움 히어로즈 야구단 상황이 딱 그렇다. 히어로즈가 KBO의 엄중한 제재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장석 전 대표이사의 '옥중 경영' 속에 지난 한 시즌을 꾸려 왔다는 사실이 적발됐다. 최근 사임한 박준상 전 대표이사와 임 모 전 고문 변호사가 "이장석 대표님에게 물어봐야 한다" "나 혼자 결정할 수 없는 부분이다"와 같은 발언을 한 녹취록이 지난 30일 한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박 전 대표가 5억원이라는 과도한 연봉을 받고, 임 변호사 역시 월 평균 5000만원에 달하는 법률 자문료를 챙겨갔다는 소식이 알려진 지 하루 만이다. 박 대표의 사임 사실을 2주 넘게 숨겼던 히어로즈 구단은 이와 관련해 "박 전 대표가 일신상의 이유로 사의를 표명했다. 다만 한국시리즈 기간이라 굳이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며 "하송 새 대표이사 선임은 30일 공식 발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29일 밤 보도가 나와 한 발 늦은 모양새가 됐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가 이 전 대표와 지속적으로 만나며 구단 운영을 상의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하루만에 "감사위원회에서 이 건과 관련해 감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박 대표가 사임했고, 임 모 변호사와 법률자문 계약을 해지했다"고 뒤늦게 입장을 바꿨다. 거짓 해명으로 옥중 경영 의혹을 덮고 넘어가려다 명징한 증거 앞에 끝내 실상을 토로한 모양새다.
이장석 전 대표이사는 지난해 11월 열린 KBO 상벌위원회에서 남궁종환 전 부사장과 함께 KBO 규약 부칙 1호 '총재의 권한에 관한 특례'에 따라 영구실격 제재를 받았다. 당시 KBO는 "두 사람은 현 시점부터 어떤 형태로든 리그 관계자로 참여할 수 없고 복권도 불가능하다"며 "향후 히어로즈 구단 경영에 관여한 정황이 확인될 경우 구단은 물론 임직원까지 강력히 제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에도 늘 히어로즈가 이 전 대표의 영향력 안에서 운영되고 있다는 소문이 야구계에 파다했고, 결국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그 실상이 만천하에 알려졌다. 구단의 보고가 아닌 언론 보도를 통해 중대한 사안을 확인한 KBO도 난감한 입장이다. 일단 히어로즈 구단에 이 건과 관련한 상세 경위서를 요청해 놓은 상황이다. KBO 고위 관계자는 "이번 주 내로 경위서를 받고 어떤 상황인지 파악한 뒤 법률적이고 규약적인 검토를 거쳐야 한다"며 "현재 관련 당사자들이 둘 다 사임한 상황이지만, 필요하다면 경위서 내용을 보고 상벌위원회를 열어 제재를 심의할 수 있다"고 했다. KBO는 경위서를 통해 이 대표의 경영 참여 범위가 어느 정도였는지, 그 결정이 구단 운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누가 옥중 경영을 주도하고 누가 숨겼는지를 파악할 예정이다. 이 관계자는 "아직 징계 수위가 어느 정도에 이르게 될 지는 결정하기 어려운 단계다. 서류를 순서대로 검토해 보고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추가 증명도 요청할 것"이라며 "당사자를 포함해 구단 전체를 전면적으로 다각도로 조사하겠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미 자리에서 물러난 박 전 대표와 임 전 변호사를 엄중하게 징계한다고 해서 얼마나 효과가 있을 지는 미지수다. 이미 이 전 대표에 대한 최고 수준 중징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던 대로' 한 구단이 바로 히어로즈다. 박 전 대표가 "직접 삼고초려해 모셔왔다"고 자랑스러워했던 허민 이사회 의장 역시 이 전 대표와 긴밀한 관계라는 게 야구계 정설이다. 허 의장의 최측근이자 새 대표이사로 선임된 하송 대표 역시 다르지 않다. 언론을 통해 공개된 녹취록 속 발언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히어로즈 구단이 언론 보도 이후 발표한 입장문에도 의문점이 많다. "이장석 전 대표의 옥중 경영 의혹과 관련해 임은주 부사장이 감사위원회에 의혹을 제기한 것은 지난 9월 말이었다. 그 후 하송 당시 감사위원장이 감사에 착수했고, 현재까지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이례적으로 처음 문제를 제기한 인물의 실명을 공개했다. 그러나 옥중 경영 의혹을 제기한 임 부사장 역시 문제가 많다고 부연설명했다. "감사위원회에서는 임은주 부사장에게 본인이 녹취하여 갖고 있다고 한 녹음파일 등 증거자료 제출을 수 차례 요청했으나 차일피일 미루며 현재까지 제출하지 않고 있다"며 "감사위원회의 감사과정에서 임 부사장 역시 옥중 경영에 참여했다는 제보를 받았다. 사안이 중대하고 시급해 임 부사장에게 직무정지 처분을 내렸고, 감사결과에 따라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요악하자면 옥중 경영을 고발하기 위해 녹취 증거까지 수집해 구단에 문제를 제기한 인물이 임 부사장인데, 누군가로부터 '임 부사장도 옥중 경영에 참여했다는 제보'를 받아 도리어 감사 대상에 올리고 징계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다. 임 부사장의 정체는 밝히면서 그를 고발한 또 다른 제보자가 누구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또 임 부사장이 어떤 이유를 대며 녹취록을 감사위원회에 제출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히어로즈 경영 감시를 위해 영입했던 허 의장의 능력에 의문이 가는 대목이다. 키움은 지난 1월 축구인 출신인 임 부사장을 새 단장으로 영입했다가 과거 축구단 단장 재직 시절 여러 송사와 의혹에 휘말렸던 사실이 알려지자 열흘 만에 교체했다. 대신 부사장 역할을 맡기고 구단 운영과 마케팅 분야의 지휘권을 줬다. 그런 인사가 옥중 경영 정황을 포착하고 증거를 모으는 동안, '구단 경영 감시자'로 키움에 온 허 의장과 하 전 감사위원장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거나 알고도 모른 척 했다는 얘기가 된다. 심지어 박 전 대표와 임 변호사가 물러난 뒤 감시자에서 경영자로 위치가 바뀌었다. 익명을 요구한 타 구단 관계자는 "이미 야구계에 알려진 히어로즈 수뇌부 헤게모니 싸움의 일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히어로즈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 "팀이 포스트시즌을 진행 중이라 조용히 진행하려 했다"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언론을 통해 공개된 후 뒤늦게 해명하면서도 또 다시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한 선수단의 성과 뒤에 숨어 버린다. 하지만 그렇다면 KBO에는 왜 미리 알리지 않았을까. 공식 발표를 하지 않고 KBO에 조용히 신고해 공조했다면, 구단이 "제출을 차일피일 미뤘다"고 주장하는 임 부사장의 녹취록을 더 일찍 얻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구단은 "신규 대표이사와 더불어 히어로즈 임직원은 히어로즈 프로야구단이 KBO 리그에서 모범적인 구단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앞으로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해 나갈 것을 약속 드린다"고 했다. 1년 전에도, 2년 전에도 그리고 더 오래 전에도 히어로즈는 경천동지할 물의를 일으킨 뒤 늘 이렇게 입장문을 끝맺곤 했다. 배영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