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마주하길 원하고, 누군가는 절대적으로 외면하려는 그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관객과 소통을 시작했다.
상업영화 정체성 안에서 출발은 흡족하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82년생 김지영'은 개봉 첫 날 오프닝 스코어 13만 명을 기록하며 압도적 수치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개봉 전 예매율 54%를 찍으며 흥행 청신호를 밝혔던 '82년생 김지영'은 관객들의 든든한 지지 속 상영 레이스를 펼치게 됐다.
장외 전쟁은 여전하다. '82년생 김지영'은 사회적 문제로 불거진 젠더 이슈 속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낙인(?) 찍히며 원작부터 영화까지 관련 콘텐츠마다 일각의 맹목적 비난을 받고 있다. 악플과 평점테러는 끌어안고 가야 할 숙명이 됐다.
하지만 논란은 논란으로 인식될 때 논란이 된다. '82년생 김지영'은 모든 이슈를 화제성으로 승화시켰고, 영화의 뚜껑이 열린 이상 근거없는 악의적 의견은 비웃음을 살 뿐이다. 물론 정당한 비판은 영화도 충분히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시사회 직후 평단의 호평과, 실관람객들의 공감 입소문은 분명 이유가 있다. '82년생 김지영'이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직접 보고 이야기해달라는 것이다. 답답함, 속상함, 애틋함 속 담아낸 한 줄기 위로가 '82년생 김지영'이 전하는 진정한 메시지다.
출연: 정유미·공유·김미경 감독: 김도영 장르: 드라마 줄거리: 1982년 태어나 2019년 오늘을 살아가는 김지영의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 등급: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18분 한줄평: 세월이 흘러도 변치않는 DNA 별점: ●●●●○ 신의 한 수: 어렵지 않다. 비꼬지도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수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아냈을 뿐이다. 결혼 후 육아를 시작한 82년생 김지영을 중심에 고정시켜 놨을 뿐, 등장인물 모두가 주인공이다. 성별도, 나이도 '문제'로 다루지 않는다. 악인도 없다. 모두 이해 가능하고, 공감 가능하다. 누구를 비난하고 욕할 마음도 안 생긴다. 오히려 미처 몰랐던 '타인의 인생'을 새삼 들여다보게 만든다. 2019년을 정신없이 살아가는 내 삶을 반 강제적으로나마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 수 많은 핑계로 무심하게 대했던 주변인들을 챙겨 볼 기회를 제공해 주는 고마운 작품이다. 평범하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특별한 양념없이 풀어냈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쳐지지 않는 균형감도 놀랍다. 아빠의 삶, 남편의 삶, 아들의 삶도 적재적소에 녹여냈다. 그래서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메시지다. 절망보다 희망에 초점을 맞췄고, 누군가의 OOO가 아닌, 내 이름 석자로 이뤄진 인생의 방향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노력한다. 정유미와 공유는 캐릭터 그 자체로 살아 숨쉰다. 러블리한 정유미, 판타지한 공유는 스스로 잠시 내려놨다. 소위 말해 '이름값' 있는 배우들의 선택과 출연은 '82년생 김지영'에 큰 힘이 됐다. 그리고 영화는 영화의 힘으로 이들에게 후회없을 완성도를 보답했다. 윈윈 효과다. 영화는 책과 달리 이 이야기를 온전히 알려주고 싶었던 누군가와 바로 옆에 앉아 같은 것을 함께 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별점이자 강점이다. 영화로 제작 돼 이토록 다행일 수 없다. 펑펑 울면서 끊게 만든 엄마와의 여행 티켓은 '82년생 김지영'이 준 또 하나의 선물이다. 신의 악 수: 여자라고 같은 여자가 아니고, 남자라고 같은 남자가 아니다. 아주 단순하게 표현해 시어머니, 엄마, 딸, 며느리 등 수 많은 명칭들은 내가 될 수도 있고 네가 될 수도 있지만 어떤 대명사의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신기하게도 그에 적합한(?) DNA가 뿜어져 나오기 마련이다. 시아버지, 아빠, 남편, 아들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의 전통성을 저격하는 것이라면 그나마 고개가 끄덕여질 평이다. 때문에 '82년생 김지영'을 실제로 관람했다면 현재 이뤄지고 있는 성별논쟁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생산성 없는 일인지 단번에 파악 가능하다. 보고싶지 않고, 이해하기 싫고, 공감하기 귀찮다면 비난도 사치다. 또한 성별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고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다. 여성의 서사를 중심으로 다뤘다는 자체를 문제로 보는 것이 문제다. 서울대 공대 나온 여자가 '애 구구단을 가르치는데 지식을 활용한다' 농치고, 부당한 일에 목소리를 조금만 높여도 여자는 '기세다'는 평과 함께 '남자로 태어났어야 하는데'라는 말을 듣는다. 옷은 단정히, 함부로 웃고 다녀서도 안 된다는 여자, 심지어 같은 여자들에게도 인생을 조금 더 많이 살아봤다는 이유로 '별나다' '유난떤다' '억척스럽다'는 시선을 받아야만 했던 그 여자가 '나는 이렇게 살고 있었어'라고 말이라도 해보려는 것이 그토록 잘못된 일일까. 지극히 평범한 현대인의 이야기가 왜 누군가의 분노를 자아내는지 알 길이 없다. 누가 이 영화를 응원하는지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그 응원이 '소신발언'이라는 형태로 표현되는 것 또한 슬프다. 다행히 이 모든 장외 논쟁은 '82년생 김지영'에는 도움되는 한 수로 작용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