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에이스 제이크 브리검(31)은 올 가을 기분 좋은 희망 하나를 이뤘다. 7년째 절친한 친구인 두산 에이스 조쉬 린드블럼(32)과 가을 야구 가장 높은 곳에서 만나게 됐다.
브리검과 린드블럼은 한국에 오기 전부터 친분이 깊던 사이다. 2013년 텍사스 마이너리그에서 함께 뛰면서 동고동락했던 팀메이트. 린드블럼이 2015년 롯데와 계약하면서 먼저 KBO 리그에 안착한 뒤 브리검이 2017년 5월 넥센(현 키움)에 대체 외국인 선수로 입단해 다시 한국에서 만났다.
브리검은 "린드블럼은 내가 야구를 하면서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친한 친구 가운데 하나다. 알고 지낸지 벌써 6~7년이 됐고 무척 가까운 사이"라며 "아내들끼리 아이도 비슷한 시기에 낳아서 아이들 나이가 같다. 가족들끼리도 친하게 지내는 친구"라고 했다.
브리검이 한국행을 결심하는 데도 린드블럼의 역할이 컸다. 브리검은 "내가 한국에 올 때도 린드블럼이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처음 우리 팀의 입단 제의를 받았을 때 린드블럼과 많이 상의했다"며 "내가 한국에 오기 전은 물론이고 이곳에 와서도 야구에 대해 가장 많은 대화를 주고 받는 친구"라고 했다.
다행히 두 친구는 둘 다 KBO 리그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아 '코리안 드림'을 이뤘다. 린드블럼은 지난해 두산으로 이적한 뒤 리그를 대표하는 외국인 투수로 자리를 굳혔다. 지난해 15승을 올려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가져간 것이 신호탄. 올해는 20승 3패, 평균자책점 2.50을 기록하면서 다승과 승률(0.870), 탈삼진(189개) 부문에서 1위에 올랐다. 평균자책점 순위도 2위다. 두산이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극적으로 우승해 한국시리즈로 직행하는 기쁨도 누렸다.
브리검 역시 순조롭게 KBO 리그에 안착해 3년째 팀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다. 올해 13승 5패, 평균자책점 2.96으로 키움의 정규시즌 3위를 이끌었다. 무엇보다 LG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과 SK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 차례로 선발 등판해 모두 무실점으로 위력적인 피칭을 했다. 팀의 시리즈 첫 승리의 든든한 발판이 됐다.
그래서 2019년 가을이 두 친구에게는 더 뜻깊다. 두산과 키움은 모두 정규시즌 내내 꾸준히 상위권을 달렸고, 마침내 가장 높은 자리에서 만나게 됐다. 브리검은 "시즌 도중에 농담 삼아 '포스트시즌에서 맞대결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며 "우리 둘의 소속팀이 다 성적이 좋아서 한국시리즈에 올 가능성이 있었으니, 종종 얘기하게 됐다"며 웃었다.
'가을 야구에서 만나자'던 브리검과 린드블럼의 그 장난스러운 희망은 이렇게 현실이 됐다. 다만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의 맞대결은 불발됐다. 린드블럼은 예상대로 두산의 1차전 선발로 나섰지만, 키움은 브리검 대신 두산전 상대 성적이 더 좋은 에릭 요키시를 첫 선발 카드로 내세웠다. 그러나 같은 마운드에서 서로의 팀을 꺾기 위해 최고의 공을 던져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브리검은 "프로에서 14년을 뛰면서 단 한 번도 우승한 적이 없다. 만약 올해 할 수 있다면 정말 정말 좋은 일이 될 것"이라며 "두산은 선발 세 명이 10승 이상을 하고 그 중 두 명이 17승 이상을 한 팀이다. 타격도 좋아서 전력이 아주 탄탄한다. 그래도 역시 우리가 더 좋은 팀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팀원 모두가 함께 누려야 할 우승의 기쁨을 위해 친구와의 우정은 잠시 접어두고 마운드에 오른다. 브리검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