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가 약물복용 전력이 있는 메이저리그 감독 출신 맷 윌리엄스를 15일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외국인 선수 영입시 약물 전력 여부와 다르게 지도자 영입에선 별도의 KBO 클린베이스볼센터 문의 절차가 필요하지 않는다. 그러나 KIA 프런트가 윌리엄스 선임시 이에 대해 충분히 고민한 흔적은 어디에서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KIA는 모그룹의 이미지를 매우 중요시하는 구단임을 고려했을 때 매우 이례적인 결정이다. 이와 관련, KBO 실무 관계자는 "감독 등 지도자의 경우는 경기에 뛰는 해당 당사자가 아니므로 등록규정 등에 있어 문제 삼을만한 조치를 할 순 없다. 어쨌든 KIA는 이 건에 대해서 어떤 통보나 문의를 하지 않았다"면서 다만, 향후 지도자들의 승부조작 부정방지 교육 때엔 지도자들의 약물 복용(마약, 향정신성 의약품) 등에 대해서 교육 확대의 필요성을 느낀다"고 말했다.
국내 프로야구에 우려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금지약물에 대해 교육 및 지도 경고 대책은 강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물 복용 사례는 늘어나고 있다. 바로 올해 프로 출신 선수(이여상)가 지도자로서 학생 선수들에게 금지약물을 투여하고, 장려한 사례가 적발돼 스포츠계를 경악케 한 바 있다. 이런 즈음 KIA가 약물전력 있는 외국인 지도자를 영입한 것이다. 또 하나는 향후 감독 및 코치가 될 '잠재적' 후보군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낸 셈이 됐다. 스테로이드, 성장호르몬 등의 불법 약물 투여 뒤 약간의 시간만 소화해내면 얼마든지 기회를 얻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케이스가 된다. 불과 몇 주 전 모 지방구단의 감독 선임을 앞두고 2000년대 초반 약물 전력으로 스포츠계 전체를 먹칠했던 이가 감독 후보에 오르자 야구계에선 일제히 우려의 시선을 보낸 바 있다. 여러모로 오버랩 되는 대목이다.
KIA에선 어쩌면 '이미 메이저리그서 지도자를 지낸 바 있어 약물전력 여부 문제는 해소된 것 아니냐'고 판단했을지 모른다. 2013년 10월 백전노장 데이비 존슨 감독이 사령탑에서 물러난 워싱턴은 신임 감독으로 맷 윌리엄스를 선임했다. 마이크 리조 워싱턴 단장은 누구보다 윌리엄스를 잘 아는 야구인 중 한 명이었다. 둘은 1998년 애리조나 창단 멤버로 당시 리조 단장은 스카우팅 디렉터로 몸담았고 윌리엄스는 팀의 간판타자 겸 주전 3루수로 활약했다. 리조 단장은 윌리엄스를 신임 감독으로 발표한 뒤 "그는 항상 팀이 먼저였고 본인은 두 번째였다. 또한, 클럽하우스의 리더였다"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지역 언론의 반응은 차가웠다. 유력 언론 워싱턴포스트는 '윌리엄스는 스테로이드 시대와 관련된 첫 번째 메이저리그 감독으로 등극했다'고 비꼬았다. ML은 ML, KBO는 KBO다. 해외리그서 통과된 사안이라고 해서 한국 프로야구가 아무런 여과 장치없이 영입을 결정한 과정 자체가 어쩌면 수치스러울 수 있는 문제다.
윌리엄스는 현역 시절 378홈런을 때려낸 강타자. 샌프란시스코 소속이던 1994년엔 43홈런을 기록해 내셔널리그 MVP 투표 2위를 차지했다. 올스타 선정 5회, 골드글러브 수상 4회, 실버슬러거 수상 4회 등 선수 시절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한다. 2001년 애리조나 소속으로 김병현과 함께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그러나 2009년 진행된 명예의 전당 투표(Hall of Fame)에서 1.3%의 저조한 득표율로 한 시즌 만에 자격을 박탈당했다. 입회 투표 자격을 유지할 수 있는 5%조차 첫 번째 시도에서 넘지 못했다. 금지약물 복용 의혹이 문제였다.
2007년 11월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윌리엄스·호세 기옌·폴 버드의 금지약물 구매 내용을 폭로했다. 기사에 따르면 애리조나 소속이던 2002년 윌리엄스는 미국 플로리다 팜 비치의 한 센터로부터 성장호르몬, 스테로이드, 클로미펜 등을 집중적으로 구매했다. 3월 5693달러(674만원)의 테스토스테론과 성장호르몬, 주사기를 주문한 기록이 있고 5월 6000달러(710만원) 상당의 물품을 추가 구매했다. 택배는 모두 애리조나주 스콧츠데일 윌리엄스 자택으로 보내졌다. 그에게 처방을 내려준 치과의사는 사기 등으로 면허가 정지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컸다. 미국은 유효한 처방전 없이 스테로이드를 소지하는 건 1991년 이후 불법이며 미국 식품의약청(FDA)이 승인하지 않은 용도로 성장호르몬을 처방하는 것 또한 불법이다.
보도 당시 애리조나 구단 방송국에서 일하던 윌리엄스는 '2002년 봄 심각한 발목 부상을 당했고 치료를 목적으로 성장호르몬을 복용하라는 조언을 듣고 실행했는데 효과가 좋지 않아 사용을 중단했다'고 항변했다. 경기력 향상이 아닌 '치료' 목적이었다는 의미다. 2002년은 관련 내용을 처벌하거나 조사할 수 없었다. 메이저리그는 수십 년 넘게 리그에서 암암리에 사용됐던 각성제인 암페타민을 2005년 11월에야 금지 약물로 지정했다. 근육강화제인 스테로이드는 1991년 금지 약물에 포함됐지만 2003년까지 관련된 검사를 선수들에게 하지 않았다. 구체적인 처벌 조항이 만들어진 것은 2005년이다.
윌리엄스는 미첼리포트를 통해 '신뢰'에 금이 갔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폭로 이후 2007년 12월 발표된 미첼리포트는 미국 전 상원의원 조지 J. 미첼이 발표한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금지약물 복용에 관한 내용으로 무려 409페이지 분량이다. 뉴욕 메츠 클럽하우스 직원 커크 라돔스키와 앤디 페티트, 로저 클레멘스의 개인 트레이너 브라이언 맥나미 등의 증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윌리엄스는 배리 본즈, 케빈 브라운, 켄 케미니티 등 리그를 주름잡던 굵직굵직한 선수들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워싱턴포스트가 감독 선임 직후 이례적으로 '약물 관련 도덕성'을 지적한 것도 바로 이 이유다.
리조 단장은 윌리엄스를 감독으로 선임하며 '약물 문제'에 대해 "논의한 내용이었지만 그것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그가 오직 코치와 경영만으로 평가받길 원한다"고 말했다. 변화를 원했던 2013년 워싱턴과 2019년 KIA는 같은 선택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