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열린 2020 KBO 신인 드래프트. 총 1078명의 지원자 중 딱 100명(총 10라운드 지명)만 프로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다. 경쟁률은 무려 10.78:1. 6명의 제자가 도전장을 내민 김백만(37) 부산정보고 감독은 교내 감독실에서 숨죽여 TV로 지명 상황을 지켜봤다. 그리고 1라운드 전체 8순위로 에이스 남지민(18)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이게 사실일까"라는 생각에 볼을 꼬집었다. 쉽게 말해 바늘구멍을 통과했다.
남지민은 김백만 감독의 '애제자'다. 원래 부산 개성중 졸업 후 경남고 진학이 예정돼 있던 선수였다. 하지만 부모님을 간곡히 설득해 부산정보고로 데려왔다. 파격적인 선택에 가까웠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경남고와 달리 부산정보고는 내세울 게 없었다. 2014년 8월 야구부 문을 연 부산 지역 고교야구 막내. 창단 당시엔 부산 지역 여섯 번째 야구고(개성고·경남고·부경고·부산고·부산공고)로 눈길을 끌었다.
부산에 야구부가 생긴 것은 부산공고 야구부가 재창단한 1984년 이후 무려 30년 만이었다. 그러나 선수층이 얇아 전국 대회에서 눈에 띄는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당장 성과를 내 프로 지명이나 대학 진학을 해야 하는 고교 선수로선 꺼리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부산고에서 코치 생활을 하던 김백만 감독은 2015년 7월 사령탑에 부임했다. 서른세 살의 젊은 감독에 대한 학부모들의 믿음은 크지 않았다. 선수 18명 중 9명이 전학을 갔다. 김 감독은 아랑곳하지 않고 백방으로 돌아다니며 선수를 수급했다. 이 과정에서 데려온 선수가 바로 전사민(개명 전 전진우)과 남지민이다.
부산정보고 포수 여성민과 투수 남지민(오른쪽). 김효경 기자
두 선수의 활약에 김백만 감독의 지도력이 더해진 부산정보고는 서서히 두각을 나타냈다. 지난해엔 부산 지역 고교 최강자를 가리는 롯데기에서 경남고를 꺾고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다. 전사민은 신인 드래프트 2차 2라운드 전체 17순위로 NC 유니폼을 입었다. 그리고 올해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8강,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선 16강에 올랐다. 남지민은 학교 역사상 첫 1라운드 지명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남지민의 프로행이 확정되는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김 감독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를 정도다. 말로 표현이 안 된다. 감사하다"며 "진우는 (고등학교) 감독이 되고 처음 프로에 보낸 선수다. 지민이는 2차 1라운드가 갖는 상징성이 있지 않나. 올해 1라운드에서 뽑힌 오른손 투수는 지민이 밖에 없다. 전국에서 넘버원이라는 의미"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번 신인 드래프트 2차 1라운드에 지명된 10명 중 투수는 6명. 이 중 5명이 왼손 투수다. 오른손 투수는 남지민이 유일했다.
공교롭게도 남지민은 '한화' 유니폼을 입게 됐다. 김백만 감독은 200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 한화 지명을 받은 이력이 있다. 당시 한화는 1차 지명에서 김태균을 찍었고, 2차 지명 가장 빠른 순번에 부산고 에이스로 활약하던 김백만의 이름을 불렀다. 당시 계약금만 2억원을 받은 초특급 유망주였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프로 생활의 결과는 좋지 않았다. 통산 4승에 그쳤다. 드래프트 상위 지명이 '성공'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김 감독은 "제자가 나와 똑같은 길을 간다니까 더 잘되고 멋진 선수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운 것도 있다. 부디 나와 같은 길을 걷진 말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지명이 된 후 지민이가 전화를 바로 해서 감사하다고 하더라. 그래서 '원래 넌 좋은 아이였고 감독이 널 키운 게 아니라 관리만 잘한 것뿐이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중요한 건 지금까지 해왔던 게 아니라 모든 걸 잊고 다시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년 전 전사민에 이어 남지민까지 졸업하면서 팀 전력은 약화됐다. 선수를 보강하기 위해 또 백방으로 뛰어다녀야 한다. 이번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한 선수들도 헤아려야 한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
김백만 감독은 "(더 많은 지명을 받지 못해) 아쉬움도 남는다. 스카우트들이 평가했을 때 부족한 게 있었나 보다. 대학교에 가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다른 평가를 받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생각을 한다"며 "(전력 약화는) 감독으로 짊어져야 하는 숙제다. 위기를 헤쳐나가야 유능한 감독이 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선우준원 투수 코치와 송혁 수석 코치 모두에게 정말 감사하다. 좋은 코치가 없으면 좋은 감독도 없다"며 공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