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볐다. 해냈다. 그리고 통했다. 조정석이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조정석의 장기'를 다시 한번 입증하며 흥행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누구도 아닌 조정석 본연의 힘이다. 애초 조정석이 아니면 안 됐던 프로젝트. 조정석은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고, 언제나 그랬듯 최선을 다해 연기했다. 설마가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 배우 조정석의 가치는 또 빛났다.
영화 '엑시트(이상근 감독)'가 누적관객수 500만 명을 돌파하며 여름시장 최고 흥행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100억 대작으로 개봉 전 제작비 면에서만 여름시장에 어울리는 작품이라는 시선을 받았던 '엑시트'다. 신인 감독 입봉작에, 배우들 역시 스크린에서는 아직 '무조건 믿고 본다'고 단언할 수 없었던 것이 사실. 하지만 영화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고, '엑시트'는 '엑시트'를 '믿고 보는'의 기준점으로 만들어냈다.
특히 원맨쇼 활약을 펼쳤다고 봐도 무방한 조정석은 '엑시트' 최고 수혜자가 됐다. '엑시트' 제작진이 1년을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조정석의 스크린 대표 캐릭터로 꼽히는 '건축학개론' 납득이를 뛰어 넘을만한 용남이다. 두 캐릭터 모두 조정석의 능력치를 쏟아부은 결과라 그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 극장가 최대 성수기라 불리는 여름시장 1위. 조정석의 이름 앞, 흥행보증수표라는 수식어가 이젠 어색하지 않다.
작품에 대한 만족도가 높으니 인터뷰 분위기도 달랐다. 개봉 전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시사회 반응이 워낙 좋아 흥행은 따놓은 당상처럼 여겨졌다. 현실화가 되는덴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절제해야 하는데 잘 안 된다"며 시종일관 광대미소를 폭발시킨 조정석은 '엑시트'에 대한 애정만큼 홀로 감내해야 했던 주연 배우로서의 책임감을 조심스레 털어놨다.
그리고 500만 돌파 직후 "한국 영화를 사랑해주시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라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영화 자체적으로도 그렇고 좋은 평가와 반응이 너무나 감격스럽다. 감사함으로 똘똘 뭉쳐 흥행에 보답해드리고 싶은 마음뿐이다"는 흥행 소감을 전했다. 열심히 달린 자, 축하와 응원을 한 몸에 받아 마땅하다.
-'엑시트' 반응이 상상 이상이다. "좋은 분위기가 실질적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놀랐다. 언론·배급 시사회 땐 특히 더 긴장을 정말 많이 하는데 곳곳에서 웃음이 터지더라. '어, 뭐지?' 싶으면서 조금씩 긴장이 풀렸다. 그리고 약간 '건축학개론' 때가 생각나기도 했다."
-잘 되는 영화들은 분위기부터 다른 것 같다. "'건축학개론'이 나에게는 첫 영화였는데, 내가 나올 때마다 웃음소리가 엄청났다. 몸둘 바를 모르겠더라. 처음엔 정자세로 앉아 있었는데 나중엔 자꾸 아래로 몸을 숨기려 하다 보니 의자에 반쯤 누워 있었다.(웃음) '엑시트'도 비슷했다. 어느 때보다 기대감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여름 성수기 시장이라 부담이 컸는데 조금 안심하게 됐다."
-'엑시트' 출연을 꽤 일찍 결정한 것으로 안다. "맞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가 드라마 '질투의 화신' 촬영을 막 끝내고 짧게 시간이 남아 시력수술을 했던 시기였다. 집에서 쉬고 있는데 제작사 외유내강의 류승완 감독님께 연락이 왔다. 그 전부터 친분은 있었는데 '책을 전해주고 싶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감독님께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시력수술을 해서 당장은 읽을 수가 없어요'라고 정중하게 말씀 드렸다. 그랬더니 감독님이 '더 잘 됐다'면서 '눈 감고 봐야 하는 영화다'고 하셨다. 그 말에 혹했다.(웃음)"
-역시 위트가 있다. "그 말이 정말 재미있지 않냐. '아, 그래요? 그럼 알겠습니다. 전해주세요. 제가 실눈을 떠서라도 보겠습니다'라고 했다.(웃음) 그렇게 받아 봤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류승완 감독님과 연출을 맡은 이상근 감독님이 '엑시트'가 내 취향 영화라고 딱 꼬집어 이야기 한 건 아니었지만 내가 좋아할 것 같은, 재미있어 할 것 같은 영화라고 생각해 주셨던 것 같다. 재미있지 않으면 안 주시지 않았을까. 그렇게 시나리오에 마음이 빼앗겼다. 뭐가 재미있었냐면…."
-답변도 척척이다.(웃음) "왠지 물어보실 것 같아서. 으하하. 난 처음 칠순잔치 이야기도 재미있었고, 재난발생 후 작은 소품들을 이용해 탈출해 나가는 과정도 좋았다. 활자로 읽었는데도 손에 땀이 나더라. 특히 외벽 타고 올라가는 장면은 내가 고소공포증은 아니지만 높은 곳을 좀 무서워 하는데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면서도 이미 마음 속에서는 '이걸 어떻게 해야 잘하지?'라고 그 다음 스탭을 밟고 있었다.(웃음) 우리 영화가 에필로그 파트도 거의 없다. 심플하게 확 몰아치고 끝난다. 그것도 매력적이었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엑시트'는 재난 영화의 클리셰가 없는 작품으로도 소개됐다. "사실 시나리오를 읽을 땐 클리셰, 신파, 고구마 100개 그런 단어는 아예 떠올리지도 못했다. 생각조차 안 났던 것 같다. 그게 '엑시트'의 강점이라는 것은 나중에 파악했다. 그저 '재미있다'는 마음이 컸다. 왜 평소에도 어디선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으면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지 않나. '엑시트'는 관객들과 공유하고 싶은 작품이었다. 완성도가 떨어지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가스'라는 소재도 유니크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앞이 안 보인다'는 설정이 눈에 띄었다."
-'용남은 조정석 아니면 안 된다'는 제작진의 믿음으로 시작된 프로젝트다. "시나리오를 보면서 나도 그런 생각을 했다. 공감이 됐다. 실제로 좀 찌질한 구석도 있고 집에서도 막내라 용남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전혀 없었다. 감독님께서 우리집이 대가족이고 내가 그 중 막내라는 것까지 아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러모로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으셨나 싶다.(웃음) 좋게는 어느정도 몸을 쓸 줄 아는 사람이라 봐 주신 것 같기도 하고. 운동신경이 아주 떨어지지는 않는다. 하하."
-어느 때보다 만족감이 큰 것 같다. 얼굴에 미소가 만연하다. "절제하고 싶은데 잘 안 된다. 하하하. 솔직히 출연 작품은 모두 아낀다. 내가 선택하고 매번 나름의 최선을 다 하기 때문에 늘 소중하다. 근데 '엑시트'는 특별히 더 만족스러운 것 같기는 하다. 여느 작품들보다 고생을 많이 하기도 했고. 원래 고생하면 약간 더 아련한 무언가가 생기지 않나. 어딘가에 자꾸 오르다 보니 팔을 많이 사용해 어깨 부상도 있었다. 찜질하고 병원 다니면서 촬영했던 기억이 난다. 그 고생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 행복하다.(웃음)" >>②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