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투수조의 '분위기 메이커' 임찬규(27)는 선배 차우찬(32)의 개인 통산 100승 기념구를 챙겼다. 경기 종료 후 차우찬에게 다가가 "형, 제가 (100승 기념 글귀를) 써도 돼요?"라고 물었다. 차우찬도 이 공이 100승 기념구라는 것을 알았지만 "형, 제가 (이 공을) 써도 돼요?"라고 잘못 이해해 "응, 네가 가져도 돼"라고 답했다. 차우찬은 "지금까지 기념구를 모아둔 게 한 개도 없다"라면서 100승 달성에도 무덤덤했다.
차우찬은 6일 광주 KIA전에서 KBO리그 역대 개인 통산 100승을 달성했다. 좌완 투수로는 장원삼(LG) 김광현(SK) 장원준(두산) 양현종(KIA)에 이어 5번째다.
앞서 100승을 올린 좌완 투수 4명과 비교하면 100승 달성까지 차우찬은 비교적 더 오래 걸렸다. 그가 선발투수로만 활약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100승 달성한 총 31명 중 차우찬은 김용수(506경기) 임창용(495경기)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개인 431번째 등판에서 영예의 고지를 밟았다. 차우찬은 입단 첫해인 2006년부터 2008년까지 57경기에 등판했지만, 데뷔 첫 승은 2009년 4월 11일 무등 KIA전에서 올렸다.
그만큼 팀이 필요로 할 때 선발과 중간 계투를 가리지 않고 불평 없이 전천후로 활약했다. 그는 욕심이 없다. 차우찬은 "선발로만 계속 뛰었으면 '빨리 100승을 올려야지' 싶었을 텐데 선발과 중간을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자연스레 뒤따라온 기록인 것 같다. 그래서 좀 덜 와 닿는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차우찬의 100승 원동력 중 한 가지는 '건강한 몸'에 있다. 2007년부터 올해까지 매 시즌 최소 20경기 이상 등판했다. 프로 무대에서 유일했던 수술(팔꿈치 뼛조각 제거)도 지난해 시즌 종료 후에 실시했다. 시즌 마지막 등판이던 10월 6일 134구 완봉승 역투로 자칫 2018년 두산전 16전 패에 빠질 뻔한 팀을 구했다. 몸 상태가 온전치 않은 가운데서도 '국내 에이스'의 책임감을 어깨에 짊어지고 공을 던졌다. 그는 "데뷔 후 지난해 처음 아팠던 것 같다.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며 "선후배를 보면 페이스가 좋을 때 아파서 이탈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런 적이 없었다. 그게 가장 큰 장점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곧이어 "아프지 않으니 잘 던져야 하는데 조금 기복이 있는 게 단점이다"며 스스로 부족한 점을 꼽았다.
차우찬은 이번 시즌 개막 후 4월까지 4승무패 평균자책점 1.50으로 호투를 펼쳤지만 이후 15경기에선 4승7패를 올리는 데 그쳤다. 그는 "6~7월 성적이 안 좋았는데 코치진에서 믿어주셨다. 후반기에는 많이 좋아지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자신했다.
구속도 점점 올라오고 있다. 이전에는 팔꿈치 상태가 온전치 않은 데다 전성기 시절보다 스피드가 떨어져 구속에 신경 쓰느라 제구가 흔들렸으나 6일 KIA전에서 최고 시속 145㎞까지 던졌다. 그는 "이제는 억지로 힘을 쓰지 않아도 구속이 올라오는 것 같다. 더 이상 (구속이 오르길) 바라지 않고 남은 경기에선 제구에 신경을 쓸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차우찬은 덤덤했지만, 후배들은 그런 그를 보며 배우고 성장한다. '신인왕 후보' 정우영은 "차우찬 선배를 굉장히 좋아한다. 선발과 중간 계투로 왔다 갔다 하면 부상 없이 길에 오래 야구를 하고 있지 않으시나"라며 "나도 차우찬 선배처럼 2~3년 중간으로 활약하다 4~5년 차부터 선발로 한번 뛰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남몰래 선행을 많이 했고, 후배들을 아낌없이 잘 챙긴다. 올해 차우찬에게 고가의 글러브를 선물 받은 이우찬은 "이름이 같아서인지 모르겠지만 2018년 스프링캠프에서 굉장히 잘 챙겨주셨다. 좋은 얘기도 많이 해줘 큰 도움이 됐다"고 고마워했다. 정우영은 "LG에 입단해 차우찬 선배님이 굉장히 멋있어 보였다. 엄청 성실하고 밥도 많이 사주고, 잘 챙겨주신다"고 말했다. 차우찬이 기량뿐만 아니라 동료들로부터 인정받는 이유다.
차우찬은 "5년 연속 10승을 의식하진 않지만 내가 기록을 달성하면 팀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당연히 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