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그룹 엑스원(X1) 선발은 끝났는데 Mnet '프로듀스X101'을 둘러싼 유료 투표 조작 의혹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단순한 팬들의 의문제기를 넘어서 사회적 이슈로 번져 법적 고소 절차까지 밟고 있다.
23일 '프로듀스X101' 팬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갤러리 일동은 자발적 후원금 330만원을 모아 법무법인 마스트의 이종환·김종휘 변호사를 법률대리인으로 선임했다. 변호인은 고소·고발장을 작성하고 고소인 참고조사와 의견서 작성의 단계까지 함께 하는 것으로 합의해 현재 법적 검토를 진행 중에 있다. 갤러리 대표자는 해당 법무법인이 CJ ENM을 상대로 저작권 관련 소송에 승소한 경험이 있어 여러 법무법인을 검토한 끝에 선임했다고도 설명했다. 법무법인 관계자는 어떤 내용으로 고소장에 혐의가 적시되는지에 대해 묻자, "현재 상황에서 답변드릴 수 있는 내용은 없다"고 말을 아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도 민원이 260건 이상 들어왔다. 관계자는 "관련팀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면 심의 안건으로 상정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간 여러 오디션 프로그램을 둘러싼 의혹들이 제기됐지만 이처럼 시청자들의 집단 고소까지 이어진 적은 처음이다. 업계 관계자는 "K팝의 영역이 확대되고 가치가 높아지면서 아이돌 팬들의 구매력이 시장을 좌우하기도 한다. 이에 팬들은 단순히 스타를 응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획사나 방송사의 컨텐트를 소비하는 소비자로서 목소리를 내는 추세"라고 전했다.
"대기업 취업사기이자 채용비리" 투표 조작 논란은 지난 19일 종영한 '프로듀스X101'에서 인기 연습생들의 당락이 엇갈리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응원하는 연습생이 탈락하자 일부 팬덤에서 제작진이 방송을 통해 보여준 1위부터 20위까지의 득표를 계산했고, 이 과정에서 일정한 숫자가 반복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팬들은 인기 시즌제 오디션인 '프로듀스X101'로 데뷔와 동시에 최고 스타의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제작진에 명확한 데이터 공개를 요구했으나, Mnet 측은 "전달받은 사항이 없다"며 상황을 방관했다. Mnet은 앞선 시즌들처럼 엑스원이 인기리 데뷔하면 유야무야 조작 의혹을 넘어갈 수 있을 것으로 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조작 의혹을 밝혀달라는 여론을 형성했다. 통계학과 교수, 로스쿨 교수, 수학자 등 여러 전문가들도 데이터를 분석하고 나섰으며 정치권에서도 관심을 가졌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주변 수학자에 물어보니 투표 결과는 조작이 거의 확실했다. 1위부터 20위까지 득표숫자가 특정 숫자(7494.44/ 총 득표수의 0.05%)의 배수(1등 178배에서 20등 38배까지 모두 다)인데, 이런 숫자 조합이 나올 확률은 수학적으로 0에 가깝다고 한다"면서 "청소년 오디션 프로그램 투표 조작은 명백한 취업사기이자 채용비리다. 자신이 응원하는 아이돌을 위해 문자를 보낸 팬들을 기만하고 큰 상처를 준 것이다. 청소년들에게도 민주주의에 대한 왜곡된 가치관을 심어준다. 이 사건은 검찰이 수사해서라도 그 진상을 명확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로스쿨 교수는 유튜브에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이득을 취하는 방송사가 투표를 조작한 것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사기 혐의에 해당할 수 있다"는 내용의 영상을 올렸다.
신뢰 하락에 '엑셀원' 오명도 증폭되는 조작 논란 속에서도 엑스원은 8월 27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리는 데뷔 쇼콘(쇼케이스+콘서트) 행사를 준비 중이다. 첫 네이버 V라이브는 200만 명 이상이 시청했고 2억개의 하트 수를 받았으며 7~8개의 광고 계약 논의와 여러 화보 촬영 제안이 이어지고 있다. 일반적인 신인으로선 이례적인 업계 러브콜이다. 하지만 향후 5년간 활동하게 되는 엑스원에 조작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말은 달라진다. 일각에선 엑셀로 투표수가 조작됐다며 '엑셀원'이라고 비꼬는 반응을 보이고 있어, 일종의 마수걸이 효과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광고 에이전시 측은 "검증되지 않은 신인을 쓴다는 건 단기간 화제성과 파급력 때문"이라고 전했다. 특히 투표 조작 의혹이 CJ EMM 오디션 전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Mnet에선 힙합 오디션 '쇼미더머니8'와 K팝 여자 아이돌 음원 대결 '퀸덤' 등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론칭을 앞뒀다. CJ EMM 산하 음악레이블에선 '월드 클래스'(World Klass)라는 글로벌 아이돌 데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Mnet 타깃 시청층이자 주 소비자인 아이돌 팬들의 신뢰 잃은 상황에서 제대로 된 아이돌 그룹 론칭이 이뤄지기란 어렵다.
논란 5일째인 24일 Mnet 측은 '프로듀스X101' SNS를 통해 뒤늦은 입장문을 올렸다. 제작진은 "최종득표수에서 일부 연습생 간 득표수 차이가 동일하다는 점을 인지하게 되었고, 확인 결과 X를 포함한 최종 순위는 이상이 없었으나 방송으로 발표된 개별 최종득표수를 집계 및 전달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면서 "순위를 재차 검증하는 과정에서 득표율을 소수점 둘째 자리로 반올림하였고, 이 반올림된 득표율로 환산된 득표수가 생방송 현장에 전달돼 일정한 득표수 차이가 생겼다"고 해명했다. 황지영기자 hwang.jeeyoung@jtbc.co.kr